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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피아노파괴 퍼포먼스서 TV로봇까지...예술혼, 영원히 남다

<30·끝> 백남준 시대별 대표작

1959년 '존 케이지를 위한...'으로 데뷔공연

61년엔 먹물에 머리카락 담구는 행위예술도

TV로 예술개념 확장이어 로봇 작품까지 선봬

88년 1,003개 모니터로 대규모 TV벽화 설치

92년 국내서 '나의 파우스트' 연작으로 회고전

음악으로 시작한 예술가의 꿈 생생히 살아있어

백남준이 1961년 선보인 ‘머리를 위한 선(禪)’ 퍼포먼스.




100년, 300년, 1만 년 후의 삶을 내다본 백남준(1932~2006)이었지만 인생은 유한했다. 대신 작품이 남아 작가를 기억하게 한다. 기획 연재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의 마지막 편에서는 백남준의 시기별 대표작을 살펴보고자 한다.

백남준은 일본 유학시절에 음악에 심취했고 ‘아놀드 쇤베르크 연구’로 논문을 쓰고 1956년 동경대를 졸업했다. 독일로 건너갈 때만 해도 피아노와 작곡 등에 관심이 많았으니 그의 지향점은 음악인 듯했다. 당시 독일 전위예술의 핵심지던 다름슈타트라는 도시에서는 ‘국제 현대음악 하기강좌’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여기에 참석하면서 백남준의 인생이 달라졌다. 그 시절 최첨단의 현대음악은 ‘음악을 넘어 선 음악’이었다. 쇤베르크가 클래식 음악의 조성을 넘어섰다면, 백남준이 스승이라 칭하는 존 케이지는 음을 파괴해 소음까지도 음악으로 끌어들였다. 이를 경험한 백남준은 무(無)음악을 추구했다. 음과 음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음을 들려주겠다며 피아노 건반과 건반 사이를 톱으로 썰어 파괴적 음향을 들려주고는 ‘공연’이라 했다.

백남준의 데뷔 공연은 1959년 11월 독일 뮌헨의 갤러리22에서 선보인 ‘존 케이지를 위한 오마주’였다. 여기서 백남준은 피아노를 때려 부쉈다. 1960년에 선보인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 공연에서는 객석에 있던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잘라 권위와의 단절을 보여줬다. 1961년에는 그 유명한 ‘머리를 위한 선(禪)’을 처음 선보였다. 먹물에 머리칼을 담가 머리로 그리는 행위예술이었다. 이처럼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반 백남준의 예술은 퍼포먼스에 집중된다.

이후 TV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시간예술인 음악과 시각예술인 미술의 접목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갤러리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개인전에서는 악명높은 ‘파괴된 피아노’들 뿐만 아니라 TV에 자석을 갖다 대 화면을 변화시킨 ‘TV자석’ 연작이 선보였다.

백남준이 1965년부터 실험을 시작해 2002년 TV형식으로도 완성한 ‘닉슨(Nixon)’. 영국 테이트미술관은 현대자동차의 기부금으로 이 작품을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사진제공=TATE


TV를 예술의 매체로 활용한 것만 해도 최첨단인데, 백남준은 로봇을 구상하고 있었다. 바로 1964년에 제작한 ‘로봇 K-456’이다. 이 무렵 백남준은 플럭서스의 일원으로 명성을 쌓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첼리스트 샬롯 무어맨과 공동작업을 시작한다. 미국으로 간 백남준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로봇을 전시했다.

“미국엘 첨 갔는데요, 저 같은 동양놈을 누가 알아줘요. 가만히 보니까 그놈들이 사람 목숨을 참 귀하게 여기더라구요. 그래서 로봇 인간을 만들어 가지고 길거리에 끌고 다니다가 큰 트럭에 치여 박살이 나게 했죠. 그러니까 끔찍해 보였던지, 그렇게 거만을 떨던 ‘뉴욕타임스’ 기자가 당장 달려오더라고요.”

유럽을 충격에 빠뜨린, 동양에서 온 ‘황색 테러리스트’ 백남준의 자기 마케팅 방식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백남준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원했고, 예술을 매개로 소통하고자 했다.

백남준이 1971년 샬롯 무어맨과 협연 형식으로 선보인 ‘TV첼로’와 ‘TV안경’ /사진제공=TATE




1960년대 후반에는 무어맨과 협업하며 음악에 섹슈얼리티(Sexuality·性)을 가미하고자 했다. 그러다 풍기문란죄로 뉴욕 경찰에 잡혀간 적도 있다. 이 시기에는 무어맨이 착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작품으로 ‘TV브라’ ‘TV안경’ ‘TV첼로’ 등을 다양하게 제작했다. 기계 문명과 인간을 결합시키려는, 앞선 시도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TV물고기’ ‘TV가든’ 처럼 금붕어나 식물을 기계장비와 결합시킨 설치작품을 고안했다. 문명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했고 생태학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1974~77년 제작한 ‘TV가든’은 지금 뒤셀도르프의 미술관에 영구 전시돼 있고, 파리에도 있으며, 경기도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에도 상설 전시 중인 그의 대표작이다.

백남준은 기계 활용에서는 최첨단의 감각을 자랑하는 동시에 사상적 배경으로는 도교의 노장사상과 불교적 분위기를 짙게 깔고 있었다. CCTV로 불상을 비추는 모습이 마주 놓인 모니터에서 실시간으로 상영되는 ‘TV부처’ 연작이 대표적이다. 또 ‘달은 가장 오래된 TV’ ‘TV시계’ 등의 설치작품은 정적이면서도 사색의 깊이가 남다르다.

백남준 ‘눈과 안개 부처(Snow & Fog Buddha)’ /사진제공=박영덕


백남준이 1991년 제작한 ‘나의 파우스트’ 13점 연작 중 대표작 격인 ‘자서전’ /사진제공=삼성미술관 리움


한편 일찍이 1974년에 인터넷 개념을 고안해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던 백남준은 1980년대에 인공위성을 활용한 ‘위성예술’을 연구했다. 조지 오웰의 ‘1984’를 모티브로 한 위성예술 3부작의 첫 작품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1984년 벽두에 전 세계를 연결했다. 전 지구적 예술 쇼는 처음이었고, 백남준은 일약 세계적 작가로 도약했다. 이 때부터 전성기가 시작됐다.

백남준의 대표 아이콘이 된 TV로봇 형태의 조각 작품은 1986년 제작한 ‘TV가족’ 연작에서 시자했다. TV할아버지, TV할머니 등을 만들어 한국식 대가족 문화를 보였고, 나중에는 ‘존 케이지’와 ‘샬롯 무어맨’도 제작했으며, 전시가 열리는 도시와 관련된 역사적 위인도 만들었다.

백남준의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Electronic Super Highway)’는 알래스카에서 하와이에 이르는 미국 대륙을 51개 채널의 영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가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재단에 기증했다. /사진제공=Smithsonian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1,003개의 TV모니터를 쌓아올린 ‘다다익선’을 계기로 대규모 TV벽화(TV Wall)작업이 시작됐다. 현재 휘트니미술관이 소장한 1989년작 ‘세기말Ⅱ’와 스미소니언박물관의 1995년작 ‘일렉트로닉 슈퍼 하이웨이’ 등이 대표작이다. 1991년 스위스를 시작으로 유럽순회전을 마치고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으로 마침표를 찍은 전시에서는 대표작 ‘나의 파우스트’ 연작이 탄생했다. 현대사회를 이끄는 13개의 개념을 TV성전의 형태로 제작했다. ‘자서전’ ‘예술’ ‘통신’ ‘농업’ ‘경제’ 등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동시에 백남준은 레이저 예술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광학 연구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 ‘TV촛불’ 연작이다. 타들어 가는 촛불이 빛의 삼원색을 이루게 해 하는 설치작품인데, 단 하나의 초가 빛으로 공간 전체를 채우는 명상적 분위기가 탁월하다. 이후 백남준은 레이저를 활용한 ‘삼원소’ 등을 제작했고 말년의 최대규모 전시인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에서 ‘야곱의 사다리’를 선보였다. 죽는 날까지 그는 새로운 예술을 꿈꿨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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