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여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봐야 뭐합니까. 괜히 시간만 오래 걸리지요. 미국이나 유럽 진출 과정에서 미국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의약품청(EMA)이 식약처 자료를 그대로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허가받아봐야 FDA에서 문제 생기면 취소되는데요.”
‘인보사 사태’는 예견됐던 일이었다. 식품과 의약품 분야에서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식약처의 정규직 의사는 단 1명. 변호사(9명)보다 적다. 신약허가 신청을 위해 FDA에 지급해야 하는 비용은 30억원으로 700만원인 식약처의 400배에 달한다. 이래서 제대로 된 심사가 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식약처의 바이오의약품 품목당 심사인력은 5명으로, 40~45명이 한 품목을 심사하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9분의1 수준이다. 심사인력의 질을 비교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식약처 심사인력 중 의사는 12명인데 이 중 11명은 비정규직이다. 최근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세포치료제·유전자치료제 등의 바이오의약품은 작용 기전상 약사보다 의사의 검증 과정이 더욱 필요하다.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받은 인보사 역시 병리학을 전공한 의사가 심사에 더욱 적합했다는 평이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니 당연히 심사기간은 길어진다. 긴 심사기간에도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기 어렵다. 심사관들은 괜히 허가를 내줬다가 자칫 잘못하면 책임론에 휩쓸린다. 다른 보직을 받을 때까지 시간을 끌며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기다리다 못한 기업들은 FDA에 바로 진출하려다가 탈이 난다. 이 과정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약 개발의 마지막 관문인 임상 3상 시험에는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 이미 엄청난 비용과 긴 시간을 들였다.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의료기기 분야의 임상 수수료 신설은 환영할 일이다. 한국산업정보연구소의 ‘의료기기 분야 적정 수수료 산출에 관한 연구’ 용역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그동안 무료로 진행됐던 의료기기의 임상시험 계획 승인 수수료가 신설된다. 임상시험 계획 승인에 160만원, 품목허가 갱신에 27만원을 받을 예정이다.
수십년간 습관처럼 복용했던 소화제에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다. 다른 산업과 달리 바이오헬스 산업에서는 안전성과 신뢰성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는 5월 우리나라의 3대 중점산업으로 바이오헬스 산업을 선정했다. 새로운 국가대표 산업으로 K바이오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식약처의 전문성 확보가 시급히 필요하다. 임상 수수료 신설은 그 첫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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