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정부의 ‘5%룰’ 완화 철회를 요구하며 오히려 주식 대량보유 보고·공시 의무를 3%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의 지나친 경영간섭으로 경영권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는 배당정책 변경 요구 등 상장 기업의 주주로서 갖는 권리를 행사할 뿐이며 공시의무를 3% 지분보유로 낮추는 것은 공시 부담이 가중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연금 사회주의’ 논란의 주인공인 국민연금은 이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6일 5% 룰 완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의 전면 철회를 건의하는 경영계 의견을 정부에 제출했다.
경총은 “주요 기업 지분을 5% 이상 대량 보유한 투자자는 국민연금과 외국계 투기펀드 등 극소수에 불과한 만큼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하려는 주된 목적은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개입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것”이라며 “시행령이 개정되면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기업 경영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경영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5% 룰은 투자자가 상장사 주식 등을 5% 이상 보유하게 되거나 이후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는 경우 5일 이내에 보유목적과 변동사항을 상세 보고·공시하도록 한 규정이다. 다만 주식 등의 보유목적이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닌 경우 보고기한 연장 및 약식보고가 허용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개정안은 기존에 경영개입 행위로 간주 됐던 이사 직무정지·해임요구, 사전에 공개한 원칙에 따른 투자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변경 추진, 배당 관련 활동 등을 허용해 5% 룰을 완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경총은 정부 안에서 경영개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행위들이 모두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모법에도 위배 된다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개정안에서 경영개입 행위에서 제외된 회사나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상법상 주주권, 배당 관련 주주 제안, 공적연기금이 행사하는 기업의 지배구조 관련 정관변경, 시장과 기업에 대한 단순 의견전달 및 대외적 의사표시 등은 경영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경총은 “개정안에서 경영권에 영향을 줄 목적이 없다고 본 행위들은 주주총회 안건에 상정되고 논의되는 자체가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 위기와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며 “특히 인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정지, 이사회 등 정관변경 등은 법 체계상 상위법인 자본시장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말했다. 이어 “302개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운용을 통해 기업의 경영권에 직·간접 영향력을 행사해 기업들은 외부 입김에 더욱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총은 오히려 “영국,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은 3% 지분 보유 시 2일 이내에 보고토록 하는 등 대량보유에 따른 보고·공시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며 5% 룰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총 관계자는 “한국은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 등과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부족해 5% 룰이 개정되면 글로벌 투기자본의 공격이 확대될 것”이라며 “대량보유 주주에 대한 보고 요건을 현행 5%에서 3%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는 ‘5% 룰 완화’도 시급한 마당에 주주권을 더 옥죄는 3% 룰 도입은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반발한다. 아울러 기존 법의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행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주주권 제고 활동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 대형 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현재도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주주권 행사에 제약이 있다”며 “3% 룰로 강화되면 주주권이 더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존 법에서는 배당을 늘리라거나 사주 일가를 위한 계열사 지원을 하지 말라는 등의 주주관여활동조차 경영참여행위로 간주돼 기관투자가들이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며 “5%룰 완화는 일종의 ‘그레이 존’을 만들어 줘서 주주권 제고를 위한 경영관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민형·이혜진기자 kmh20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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