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와 대만 TSMC간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주도권 확보 경쟁 격화에 극자외선(EUV· Extreme UltraViolet) 노광장비 생산업체인 네덜란드의 ASML이 웃음짓고 있다. 파운드리 경쟁이 최근 7나노(1㎚=10억분의 1m)급으로 까지 초미세화 되면서 EUV 노광장비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ASML에 주문량이 쏟아지는 탓이다. 노광 공정은 반도체의 원판인 웨이퍼를 깎아내기 전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으로 EUV 빛 파장은 기존 불화아르곤(ArF)의 14분의 1 수준인 13.5나노에 불과해 초미세 작업을 가능케 한다.
17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피터 베닝크 ASML 대표는 올 3·4분기 실적 발표 직후 “3분기에 7대의 EUV 노광장비를 출하하고 23대의 EUV 신규 주문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EUV 노광장비는 1대당 2,000억원이 넘는 고가 제품으로 ASML의 매출 또한 전년 동기 대비 7% 가량 늘어난 30억 유로를 기록했으며 올 4·4분기에는 39억 유로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올 들어 ASML이 출하한 EUV 노광장비 대부분은 TSMC가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ASML이 공개한 올 3·4분기 매출 중에서 대만 업체의 기여도는 54%인 반면 한국은 11%에 그친 탓이다. 또 올 2·4분기 ASML 매출 점유율은 대만이 46%, 한국이 26%였으며 올 1·4분기에는 대만이 43%, 한국이 25%로 대만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3·4분기 ASML 매출 비중에서 한국이 33%로 대만(30%) 대비 높았다는 점에서 TSMC가 전년 대비 EUV 장비 확보에 한층 공을 들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ASML 측은 3나노 공정까지 로드맵을 완성한 상태로 애플, 엔비디아, 퀄컴, 화웨이 등 주요 고객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 3·4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가 18.5%로 TSMC(50.5%)와 격차가 크다. 특히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등 자사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자체 파운드리로 양산하는 만큼 TSMC와의 실제 격차는 더욱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삼성 측은 시스템 반도체 육성에 향후 11년간 133조원 투자를 공언한 만큼 TSMC 점유율 추월을 자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4월 세계최초로 7나노 EUV 공정제품 양산에 성공하며 기술력을 입증한데다 내년에는 화성캠퍼스 EUV 전용 라인을 본격 가동해 ‘2030년 파운드리 시장 1위’ 자리를 꿰찬다는 계획이다.
향후 인텔까지 EUV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라 EUV 노광장비 시장 수요 급증이 예상된다. IC인사이츠 보고서에 따르면 10나노 미만 반도체 생산 규모는 올해 웨이퍼 기준 월 105만장에서 2023년에는 월 627만장으로, 같은 기간 10나노 미만 반도체 공정 점유율은 5%에서 25%로 각각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주로 ArF 노광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10나노 이상 20나노 미만 공정은 생산규모가 같은기간 월 661만장에서 529만장으로 떨어진다. 노광 장비는 빛의 단파장 길이에 따라 G선, I선, 불화크립톤(KrF), ArF, F2 레이저, Ar2 레이저, EUV 순으로 발전해 왔다. EUV 공정으로 칩을 양산할 경우 파운드리 업체는 동일 웨이퍼로 더 많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어 원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반도체 설계 기술은 있으나 생산 라인이 없는 팹리스 업체 또한 EUV 공정에 위탁할 경우 칩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니콘이나 캐논 또한 노광장비를 만들지만 ASML과 같은 EUV급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결국 EUV 공정에서 삼성전자와 TSMC의 파운드리 주도권 경쟁이 판가름 나는 만큼 관련 시장의 독과점 사업자인 ASML의 ‘슈퍼을’ 지위도 계속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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