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내년 새 예대율 규제 적용을 앞두고 담보부채권의 일종인 커버드본드를 5개월 만에 2조8,000억원어치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저금리 속에서도 조달비용이 높은 정기예금도 1년 만에 10% 넘게 늘어났다. 수익성이 아닌 규제 회피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예수금 확대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여기에 가계대출 규제, 비이자이익 부문의 악재 등으로 은행 성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일각에서는 ‘역마진’ 위험에 내몰린 보험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KB국민·SC제일·신한은행은 5개월 만에 2조7,600억원어치의 커버드본드를 발행했다. 전체의 75%(2조600억원)를 찍어낸 KB국민은행에 이어 지난 6월 5,000억원 규모의 커버드본드를 발행한 SC제일은행도 최근 발행한도를 6,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증액하고 추가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관련 시스템을 정비해온 우리은행도 연내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은행들이 커버드본드 발행에 나선 것은 내년 1월부터 적용되는 새 예대율(예수금 대비 대출액 비율) 규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정부의 가계대출 조이기에 따라 새 예대율 산정 때는 가계대출에 15% 가중치가 적용되는데 수요가 많은 가계대출을 줄이기 어려운 은행들은 예수금 늘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수단은 커버드본드다. 올해부터 커버드본드 잔액의 1%까지 예수금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커버드본드 발행이 은행의 수익성에는 오히려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원화 커버드본드는 법 제정 후 지난 5년간 은행권에서의 발행이 전무했다. 설비·인력·담보물 관리 등 비용이 높아 발행자 입장에서는 은행채 대비 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 이중 보호로 안정성이 높지만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은행의 신용등급이 워낙 높아 국내 시장에서는 이마저도 효과가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최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저금리 장기화로 은행채 발행 비용은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을 위해 커버드본드보다 은행채 발행이 유리하지만 규제에 맞추기 위해 억지춘향 식으로 커버드본드를 택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커버드본드는 이미 나간 담보대출을 담보로 잡는 채권인 만큼 체계적으로 담보물을 관리·운용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며 “자금 조달만 하려면 은행 신용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훨씬 쉽지만 규제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예수금 확대를 위해 조달비용이 높은 예·적금 유치 경쟁도 벌이고 있다. 9월 말 기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수신액은 725조6,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0.4% 늘었다. 김도하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예대율 개편을 앞두고 고비용성 조달인 예·적금에서 수신 경쟁이 포착됐다”며 “순이자마진(NIM)을 훼손하는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은행들이 규제 맞추기에 급급한 사이 국내 은행의 장기적인 성장성과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더 커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자본규제 강화와 초저금리에 따른 수익성 악화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보험사의 전철을 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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