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한국산 화학소재의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사를 개시하는 등 무역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수출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국·일본에 이어 신흥시장인 인도에서도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정부의 고민도 한층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인도 상공부 산하 무역구제사무국(DGTR)은 이달 초 한국산 무수프탈산에 대한 세이프가드 적용을 검토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2018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해당 제품의 수입물량이 급증하고 있으니 수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자국 업체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무수프탈산은 가소제의 일종으로 플라스틱 제품의 틀을 변형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인도가 철강·화학제품 등 한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장벽을 한층 높여가는 모양새다. 인도는 6월 석도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한 데 이어 스테인리스강 등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고부가 제품으로 꼽히는 염소화폴리염화비닐(CPVC)에 60%의 반덤핑관세 예비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통상당국은 30일께 업계와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당장 뾰족한 방법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누적된 무역적자가 자국 선거 때마다 문제가 되면서 한국산뿐 아니라 다른 수입산 제품에 대해서도 무역규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흥시장으로 떠오른 인도가 무역장벽을 점차 높이면서 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중국 등 핵심 시장으로의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대체시장인 인도 판로까지 막힐지 모른다는 우려다.
업계는 인도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도의 최근 경제 성장세가 기대치를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4분기 8%대를 기록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 1·4분기 5.8%로 떨어졌고, 실업률도 2017∼2018회계연도 기준 6.1%로 4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5월 총선정국을 거치며 위축된 소비활동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인도가 고질적인 무역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인도가 무역적자의 70%가량을 중국에서 보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며 “어떻게든 무역적자 문제를 풀려다 보니 다른 나라의 수입품에까지 진입장벽을 세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통상전문가는 “중국마저 성장세가 꺾이면서 몇 안 남은 시장이 인도”라며 “각국이 인도에 구애를 보내는 상황인 만큼 주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무역규제를 남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출부진이 길어지면서 미중 등 핵심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인도 등 신흥국 문을 두드리던 업계의 시름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월간 수출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9월까지 10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달 역시 마이너스가 불가피해 보인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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