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에 성과 중심의 직무급 도입을 유도하는 대신 임금피크제 삭감률을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성과 중심의 직무급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되 기관별로 편차가 심한 임금삭감률을 조정해 노동계의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취지다.
2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발족을 앞둔 2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에서 직무급 도입과 임금피크제 개선 방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직속 경사노위 분과인 공공기관위원회에는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고용노동부와 한국노총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앞서 기재부는 지난 2015년 도입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5월부터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의뢰해 진행해왔다. 이 조사에 따르면 기관별로 임금피크제로 인한 총급여 삭감률이 최소 30%에서 최대 120%까지 큰 편차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퇴직 전까지 임금삭감이 이어지는 기간도 1년에서 6년으로 천차만별이었다.
이와 함께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일부 기관은 58세 이후 급여가 감소하는데도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보다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하는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젊은 직원에 비해 생산성과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시점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한다는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사례인 셈이다.
정부는 경사노위 논의 테이블에서 이러한 임금피크제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 방안을 ‘당근책’으로 제시하는 대신 직무급 도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할 방침이다. 업무의 성격과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책정하는 직무급이 현장에 완벽하게 안착하면 임금피크제는 사실상 의미가 사라지지만 공공기관 도입률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전임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가 기관별 노사합의를 우선 원칙으로 내세우면서 신설 기관이나 자회사를 제외하면 직무급을 시행하는 기관은 새만금개발공사·석유관리원·산림복지진흥원 등 3곳뿐이다. 이들을 뺀 나머지 300여개 기관은 성과와 상관없이 연차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현재 10곳 안팎의 기관에서 노사가 직무급 도입을 긍정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밑그림대로 경사노위에서 합의가 원활하게 이뤄지면 공기업 현장에 직무급 도입이 확산되는 단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임금의 형평성,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연공서열형 호봉제의 문제점 등을 고려하면 공기업 노사가 앞장서 직무급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기업의 직무급 도입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방만한 공공기관의 ‘몸집 불리기’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16년 2만1,059명, 2017년 2만2,637명이었던 339개 기관의 정규직 신규 채용 규모는 지난해 3만3,900명으로 급증했다. 7~8% 수준이었던 증가율이 지난해 49.8%로 뛰어오른 셈이다.
정부는 경사노위의 논의와 별도로 산업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두루 청취하면서 직무급 도입 확산을 위한 매뉴얼 발간도 준비하고 있다. 노사 합의 우선이라는 대전제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직무급 도입을 꾸준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은 제도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들어 임금피크제 자체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평생을 함께한 직장에서 임금 삭감으로 의욕이 떨어지고 상처만 안은 채 정년퇴직해야 하는 임금피크제는 타당성이 없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정년연장으로 인한 청년채용 여력 위축 등을 고려하면 임금피크제 폐지는 수용하기 힘든 요구”라고 맞섰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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