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형 전자담배의 사용 중단을 강력하게 권고한 정부의 2차 대책을 놓고 ‘늑장 대응’ ‘재탕 발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 중증 폐 손상 사례와 사망자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주요 국가들이 잇따라 판매금지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안이하게 대응했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추가 대책을 지적하자 부랴부랴 권고 수위를 한 달 전의 ‘사용 자제’보다 높여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게 아니냐는 게 정치권과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정부가 23일 발표한 액상형 전자담배 대책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식품의약품안전처·기획재정부·환경부·여성가족부·관세청 등 관계부처가 총동원됐다. 지난달 20일 사용 자제를 권고한 1차 대책에서 복지부와 식약처·질본 등 3개에서 관계당국이 대폭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1차 대책과 2차 대책의 기본 줄기는 비슷해 사실상 재탕 수준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부가 이날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해 제품의 회수와 판매금지 등 관련 규정을 가다듬고 유해성 성분 분석과 인체 유해성 조사에 나서겠다는 내용은 모두 1차 대책에서 제시된 바 있다. 문제는 1차 대책 이후 한 달이 넘는 기간에 상당 국가가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판매금지에 나섰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24일 가향 전자담배 액상 판매를 금지했고 말레이시아는 지난 14일 전자담배 판매 전면금지 검토를 발표했다. 앞서 인도는 지난달 18일 전자담배 생산·수입·판매를 전면금지했고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에서도 지난달 13일 액상형 전자담배인 ‘쥴’의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
국내에서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은 올해 5월 출시 당시부터 제기됐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관련 법 부재를 핑계로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 공전으로 담배 관련 핵심법안들이 줄줄이 먼지만 쌓여 있는 상황에서 국회 입법으로만 해결하겠다는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6년 11월 발의한 담배 성분 검사·공개 관련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3년째 계류돼 있다. 박맹우 한국당 의원이 2016년 7월 발의한 유해성분을 초과하는 담배의 판매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도 법사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법안마저도 내년 4월 총선 전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모두 무위로 돌아간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담배의 형태도 진화하고 있다”며 “우선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되 통과되기 전까지라도 화학물질 관리나 관세통관 등의 측면에서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나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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