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대의 카메라들이 남한강이 내려오는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물안개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솟아오르는 일출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은 오랜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동쪽 산너머를 물들였던 주황색이 하얗게 변했고 그 자리를 물들였던 주황색과 노란색은 더 높은 하늘로 번져 나갔다.
“두물머리는 지금도 아름답지만, 팔당댐이 들어서기 전 이곳은 백사장이 펼쳐진 절경이었다”는 것이 이곳 주민들의 전언이다. 다산 정약용이 초의선사와 주고받은 서찰에 “추사 김정희와 셋이서 두물머리에 배 띄우고 놀자”는 이야기가 빈번한 것만으로도 이곳의 풍경을 짐작할 수 있다.
팔당댐 건설로 일대가 수몰된 대신 얻은 것도 있다. 다름 아닌 안전이다. 예전에는 비가 오면 범람하기 일쑤였지만 하류에 팔당댐이 조성되면서 수위조절이 쉬워져 이제는 물난리를 모르고 살게 된 것이다.
5·16쿠데타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였던 한국을 선진국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줄 때 군사정부는 프랑스에 팔당댐 건설을 요청했다. 프랑스는 요구를 수락했고 자국 기술자들을 보내 건설한 다목적댐이 오늘의 팔당댐이다. 팔당댐 건설 이후 두물머리는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했다.
양평군의 관문인 두물머리는 서쪽으로는 남양주, 남쪽으로는 광주시와 접하고 있는데 남한강 물길을 따라 물산이 오가던 시절, 이곳은 수상교통의 요지였다. 마을에는 40가구가 넘게 살았고 주막 여러 곳에 마방(馬房)까지 있었다. 이 마을 나룻배 30여척이 근처 산판에서 생산된 땔감을 한양으로 실어 내릴 정도로 번성한 적도 있었다.
양평군은 풍광이 수려한 이곳의 국가정원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립 정원 1호로 지정된 이곳을 순천만국가정원과 울산 태화강정원에 이은 세 번째 정원으로 밀고 있는 것이다.
김병국 문화관광해설사는 “두물머리는 풍경이 아름다워 영화를 자주 촬영하는 곳”이라며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중국과 대만 관광객들이 단체로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해가 솟아올라 여명의 붉은 기운이 사라지면서 사진작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기자도 카메라와 삼각대를 걷어 차에 싣고 용문사로 향했다.
용문사를 품고 있는 용문산은 지난 2007년까지만 해도 공군부대가 정상에 자리 잡고 있어 일반의 통행이 제한됐었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등산로를 정비하고 있어 또다시 산행을 금지하고 있다.
가석봉을 정상으로 둔 용문산은 돌산이어서 등반이 만만한 편은 아니다. 어차피 이번 취재 길에 등산을 계획한 것은 아니어서 천연기념물 30호인 은행나무를 먼저 보기로 했다. 이번 양평취재의 목적 중 하나가 용문사 은행나무의 노랗게 물든 잎을 보는 것이었는데, 어렵게 찾은 나무는 청청한 잎새를 달고 있었다. 다만 밑동에 깔린 검은 비닐 위로 은행 열매가 흩뿌려져 있었다.
김도희 문화관광해설사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동양에서 가장 큰 유실수로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뿌리를 내렸다는 설과 경순왕 때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설이 있다”며 “용문사를 지키는 천왕목으로 나라에 길흉이 있을 때마다 나무에서 소리가 나는데 고종이 승하했을 때 나뭇가지가 부러졌고, 한국전쟁, 해방 직전에 나무에서 소리가 났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 소리를 들었다는 주민도 아직 생존해 있다. 나무 뒤에는 90m 높이의 철탑이 있는데 이는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피뢰침을 설치해놓은 구조물이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도하고 치성을 올린 까닭에 고사 지경까지 갔던 나무는 양평군청이 울타리를 두르는 등 보호에 나서면서 이제는 기력을 회복해 해마다 다섯 가마의 은행 열매를 안겨준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 단풍이 늦게 드는데 해마다 11월 초면 노란색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나무의 높이는 51m, 둘레는 14m로 우리나라 영토 안에 있는 나무 중 가장 크다.
은행나무의 운치를 맛보려면 구둔역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용문사에서 멀지 않은 구둔역은 지금은 폐쇄된 역으로 관광지의 구실만 하고 있다. 한때 이 역에 서던 기차들은 타고 내리는 사람이 없는 이곳 대신 인근의 일신역으로 우회하고 있다.
구둔역이 유명해진 것은 영화 ‘건축학개론’이 히트한 후로, 요즘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역사 앞에 있는 한 그루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역 전체를 노랗게 물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글·사진(양평)=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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