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었던 지난 8일 오후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들은 ‘한국경제 바로알기’ 자료를 갑자기 냈습니다. 정부는 “어려운 대외여건 하에서도 우리 경제는 재정의 역할 등을 통해 경기 하방압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은 경제수준·규모가 유사한 30-50클럽 중 2위, G20 국가 중 5위를 기록할 것”이라고 평가했는데요. 경제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탓에 ‘정부의 경제낙관론을 이번엔 믿어도 될까’하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옵니다.
◇재정건전성 세계최고?
정부는 이번 자료에서 우리나라이 재정건전성이 세계적으로 양호하기 때문에 확장적 재정정책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이며, 공공기관 부채비율은 6년 연속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예상하는 내년 국가채무 비율은 39.8%입니다. 2023년까지 국가채무 비율을 40% 중반 수준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인데요.
올해 9월까지의 관리재정수지 적자규모가 관련 통계 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상황과는 사뭇 다른 해석입니다. 중앙정부의 채무도 약 694조원으로 전년(651조원)대비 43조원이나 늘어났습니다. 반면 반도체 산업 불황으로 인해 상반기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하면서 법인세 등을 포함한 국세수입은 감소했죠. 세수 적자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복지 관련 정부의 재정확대 기조가 이어지면서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큰 장점 중 하나인 재무건전성을 악화시켜선 안된다는 의견입니다. 허진욱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은 “재정여력이 확보돼있는 건 맞지만, 앞으로 미래에 쓸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며 “기초연금 인상이나 고교 무상교육, 청년 임대주택 제공 등은 나중에 없애기 어려운 정책들이어서 장기적으로 재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령화와 맞물려서 건강보험이나 연금 등 지출이 자동으로 많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지적됩니다. 미국이나 유럽만 봐도 정부의 재량 지출보다는 복지로 인한 ‘의무 지출’ 비율이 국가채무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죠.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돼 가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출에 비해 세수가 빠르게 증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고용지표 개선, 고용의 양과 질 모두 회복세?
특히 정부는 취업자수와 고용률, 실업률 등 3개 고용지표가 개선되며 고용의 양과 질이 모두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한국경제 바로알기 자료를 보면 “고용률이 역대 최고 수준이며 외국인 관광객 회복세에 힘입어 숙박음식업 취업자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돼있습니다. 이어 청년고용률이 역대 최고 수준이고 실업률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음식·숙박업 부문의 평균임금은 200만원 수준으로 다른 산업 부문에 비해 낮고 단기 계약이 많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고용의 질이 높아졌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더욱이 지난달 말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지난해보다 86만명 늘어 12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죠.
정부는 아르바이트 등 단시간 일자리만 증가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노인·여성 경제활동 참가 확대와 근로시간 단축 등 근로문화 여건 변화로 노동 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글로벌 추세”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단시간 노동자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낮은 수준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최영기 전 노동연구원장은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투입이 줄어들어서 그 자체로서 성장률을 갉아먹는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단축이 성장을 저해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을 촉진하는 자극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생산성 향상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탄력근로제 같은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나 호봉제 폐지 등 임금제도 유연화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투기 차단 실수요자 보호로 부동산 시장 안정?
아울러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정부는 “투기는 철저히 차단하고 실수요자는 보호하는 정책을 폄으로써 전반적으로 안정적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봤습니다. ‘투기수요 근절’ ‘실수요자 보호’ ‘맞춤형 대책’의 3대 원칙에 따라 주택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자평했는데요.
정부는 주택 매매가격과 전·월세 가격이 모두 거의 오르지 않아 안정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시행한 9·13대책 덕분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아파트값 변동률을 보면 지역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심화한 걸 볼 수 있습니다. 전국 평균으로 보면 2017년 5월부터 지난달 14일까지의 아파트값은 -1.93%로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강남권 아파트값은 12.13% 늘어났습니다. 지방의 아파트값은 -7.25%를 기록하며 곤두박질쳤는데요. 수도권 집값을 잡겠다고 정부가 수많은 부동산 정책을 만들고 시행했지만 오히려 서울 등 수도권 집값은 계속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 투기과열 지역 재건축 단지가 폭리를 취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취지보다는 주택 공급 감소로 아파트 매매·전셋값이 급등해 경제주체들의 소비심리를 더 위축시키고 있다”며 “재건축 허용이 쉽지 않지만 일부 투기세력을 규제하려다가 오히려 경제성장에 악영향이 미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규제혁신 지속 추진?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사례를 통해 해묵은 과제들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규제혁파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올해 규제 샌드박스 사례 목표 100건이 지난달 2일 기준 141건을 돌파해 조기달성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또 공무원이 규제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폐지하는 규제입증책임제를 도입해 연내 1,800여개 행정규제를 정비한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 현장밀착형 규제혁파를 위해 현장 건의에 기반한 신문고 등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정부의 규제혁신이 말뿐이라고 지적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타다’ 서비스를 들 수 있습니다. 타다 서비스는 기존 택시업계의 반발로 인해 사업 확장에 부진하다가 최근에는 서울중앙지검에 불법으로 기소됐습니다. ‘타다’ 뿐만 아니라 ‘카카오택시’ 등 공유 차량 서비스 관련 논란은 수년전부터 지속돼왔습니다. 정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흐지부지되고 말았죠. 미국·유럽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에서 ‘우버’, ‘그랩’ 등의 서비스가 인기를 끌며 확장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밖에 원격의료 서비스도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의사업계의 반발 때문에 서비스 시행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강원도에 ‘경제특구’를 만들고 지역에 한정시켜서라도 디지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참여하려는 의료기관이 없어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정부의 ‘선 허용, 후 규제’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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