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묘사된 가상의 화면 안에 자동차 한 대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자동차는 도로 위의 표지판을 인식하고, 앞차와의 거리, 다른 도로에서 진입해 들어오는 차, 보행자 등을 계산해 속도를 조절하고 차선까지 변경한다. 갑자기 비가 오거나 노면 상태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설정값이 입력되면 이를 자동 인식해 운행에 반영한다.
이 시스템은 최근 볼보가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을 위해 도입하는 등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들이 주목하는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오토파일럿’ 솔루션이다. 엔비디아는 원활한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을 위해 ‘슈퍼팟(Super Pod)’이라는 슈퍼컴퓨터도 개발했고, 이는 전 세계 슈퍼컴퓨터 상위 500개 중 2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새미어 딜런 엔비디아 기술 마케팅 매니저는 “가상현실에서 자율주행 딥러닝 학습을 시키기 때문에 실제에서는 학습시키기 어려운 여러 조건을 넣어서 언제든 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자율주행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관심이 높은 AI 트렌드 중 하나다. 포브스가 선정한 50위 AI 스타트업 중 1위와 2위가 모두 자율주행 관련 업체이기도 하다. 실제 실리콘밸리를 다니다 보면 위에 레이더를 달고 자율주행에 활용될 데이터 정보를 수집하는 차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마리벨 로페즈 AI 전문 애널리스트는 “자율주행은 사람들이 운전하는 시간 동안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등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AI 분야에서 투자 가치가 정말 높은 분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구글의 웨이모,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시뮬레이션 등이 세계적인 기술로 꼽히는데 이들은 자율주행 시스템의 고도화를 위해서는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해 학습 데이터를 서로 공개하며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딜런 매니저는 “구글이 엔비디아의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고, 이를 통해 양사 간 기술 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출장길에 찾았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중심 상업지구인 유니언스퀘어. 애플스토어와 디즈니 숍 등 유명 브랜드 매장부터 각종 고급 호텔들과 대형 금융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엔비디아와 협업해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의 보행자 수를 실시간 분석하고 있다. 분석 결과는 주변 업체에 제공돼 마케팅이나 고용에 활용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시간대에 타임 세일을 한다든지 평균 유동인구가 많은 시즌에는 가게의 직원을 추가로 고용하고 반대의 경우 인력을 줄여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스마트시티’의 한 단면인 이 기술은 AI가 5세대 이동통신(5G) 및 에지 컴퓨팅 기술을 만나 가능했다. 에지 컴퓨팅은 데이터를 중앙서버까지 가져가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 에지(가장자리)에서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 개념을 도입하면 도시 곳곳의 수많은 센서들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중앙까지 보내지 않고 네트워크 말단에서 즉각적으로 AI 분석처리를 할 수 있다. 저스틴 보이타노 엔비디아 제품 및 에지 컴퓨팅 시니어 디렉터는 “5G와 에지 컴퓨팅은 AI의 발전에 무궁무진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면서 “데이터 전송속도가 다섯 배 이상 빨라지면서 실시간으로 AI가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뿐만 아니라 월마트 같은 대형마트에서도 이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월마트에서는 마트의 수많은 센서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매장 직원들에게 진열대 제품 보충, 결제 라인 추가, 쇼핑 카트 회수 등에 대한 알람을 자동으로 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보이타노 디렉터는 “현재 월마트는 에지 컴퓨팅을 활용한 AI 시스템을 뉴욕의 한 매장에 적용해 실험하고 있고, 1만1,000여개의 미국 전 지역 매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분야에도 AI 기술을 도입해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엔비디아의 ‘클라라’라는 AI 플랫폼은 최소한의 방사선 노출만으로도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한다고 할 때 암을 방사선으로 정확히 감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방사선에 노출돼야 한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인체에 유해한 방사선량을 최대 90%가량 줄이고, 여기에 AI가 딥러닝을 통해 학습한 결과를 반영해 방사선에 100% 노출된 것과 같은 수준으로 이미지를 구현한다. 딜런 매니저는 “사람들은 방사선 노출에 대한 우려가 있음에도 진단의 정확도 때문에 한 번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면서 “AI를 적용하면 적은 양의 방사선 노출로도 선명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어 진단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15년 개발된 클라라는 현재 존스홉킨스병원과 스탠퍼드대과 파트너십을 맺고 현재 수많은 임상 실험에 적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IBM 알마덴 연구소도 이와 비슷한 의료기술을 연구했다. 지난 9월 발표된 해당 기술은 의료 데이터가 AI가 학습할 만큼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적은 데이터로도 높은 진단 정확도를 구현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실리콘밸리=백주원기자 jwpai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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