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이 ‘헤드쿼터’ 격인 지주사의 인원을 절반 가까이 줄이는 것은 위기의 강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경영환경에서 지주사 체계보다는 계열사 강화가 최우선 과제라는 분위기가 반영됐다. CJ뿐만 아니라 이미 상당수 대기업은 안팎으로 전례 없는 경영환경 불확실성에 직면해 비상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CJ그룹은 지주사 슬림화에 돌입한다. CJ그룹은 과거 지주사의 일부 팀을 CJ제일제당 등 계열사로 이동시킨 적은 있지만 지주사의 거의 모든 팀별 인원을 슬림화해 계열사로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4년께 당시 이채욱 CJ그룹 부회장이 지주사를 맡으면서 오너 리스크 대비와 함께 지주사 체제가 강화됐다. 임원 수 역시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기 전인 2012년 말 3명의 대표이사를 포함해 12명(비상근 임원 제외)이었으나 2017년에는 22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CJ그룹은 오는 2020년까지 매출 10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그레이트 CJ’ 전략에서 선회한다. CJ그룹은 지난해 약 30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그레이트 CJ’를 위해서는 2년 만에 2배 이상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공격적 인수합병(M&A)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이를 발표할 당시 M&A로 규모의 경제를 노린다는 계획이었지만 규모 대신 내실을 강화하며 위기를 견디는 것으로 노선을 수정했다. CJ그룹은 2017년 브라질 단백질 소재 기업 셀렉타부터 지난해 미국 냉동식품 2위사인 쉬완스까지 최근 3년간 크고 작은 M&A를 11건 진행했다. 쉬완스의 매출은 올 6월 말부터 CJ제일제당의 실적으로 인식돼 올해 상반기 매출은 약 8,500억원, 이익은 약 250억원이었다. M&A 기업들이 아직 본격적인 실적 성과를 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그룹 내부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3·4분기 영업이익이 26.5% 줄어든 CJ제일제당의 경우 연말 성과급 지급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이렇게 되면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성과급을 건너뛰게 된다.
CJ그룹은 시계 제로의 상황에서 내실에 방점을 찍고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CJ제일제당은 유휴부지인 서울 가양동 땅 10만5,762㎡를 연내 매각해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확보하기로 했다. CJ제일제당은 연말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1,700억원을 현금으로 상환해 이자비용 부담도 던다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롯데그룹도 지난달 계열사 대표이사와 주요 임원들이 참석한 경영간담회에서 비상경영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국내 및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있다”며 “발생 가능한 외환·유동성 위기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1조원가량의 적자가 예상되는 LG디스플레이는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교체하고 임원 25% 감원에 나선 데 이어 생산직·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사는 복지 중단 및 축소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선제적인 자구방안에 합의했고 만도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임원 규모를 20% 줄이기로 결정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9월 “지난 20년간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이라며 “앞으로 30년은 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여기에 적응하는 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9월 “L자형 경기침체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의 위기에 앞으로의 몇 년이 우리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제대로 빠르게 실행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변화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보리·이재용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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