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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카페 많은 동네일수록 안전한 이유는

■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내 집처럼 친밀한 공공장소 등

'제3의 공간' 많을수록 범죄 감소

공원·카페·놀이터·도서관...

사회적 인프라의 중요성 역설





뉴욕 동쪽의 브루클린은 뉴욕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동네이자 살인·폭행·성범죄 발생률이 높은 곳으로 악명 높았다. 사회학자들은 종종 이 지역을 ‘고립됐다’며 우려의 시선으로 보곤 했다. 어느 날 평소 같았으면 집에만 있었을 중·노년 주민 9명이 도서관 커뮤니티룸에 모였다. 우리로 치자면 장기나 화투 게임 정도랄까. 볼링 경기를 했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이들의 끈끈한 동료애와 넘쳐나는 웃음소리에 빨려들었고 “서로 거의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동네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말했던 ‘집합적 열광’이 나타난 희귀한 순간”을 “레이 올든버그가 말한 ‘제3의 장소’에서” 목격한 것은 저자에게 충격적이었다. “사회는 건물처럼 설계될 수 있다”고 믿게 된 계기다. 저자가 이곳에서 목격한 사회적 유대감은 미국 전역의 공공 도서관 수천 곳에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다.

신간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는 폭염을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적 재난으로 풀어낸 ‘폭염사회’로 세계적 주목을 끈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교수의 새 책이다. 1995년 7월 시카고를 덮친 폭염으로 일주일 새 주민 739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통해 지역사회의 긴밀성, 주민들 간의 유대관계가 사망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한 저자는 이번에 한발 더 나아가 “어떤 여건을 갖춘 공간에서 살 때 사람들끼리 돈독히 지내고 서로 지지하는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커질까”의 문제를 파고 들었다.

책에서 저자는 사회적 인프라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회적 인프라는 “사업·하부구조·기반 등 하위요소를 통칭하는 단어”로 정의되는 ‘사람들이 교류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물리적 공간 및 조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군사·경제 전문가들과 냉전 시대의 정책 입안자들이 즐겨 사용하던 인프라가 대중교통·전기·가스·상하수도·식량·재정·난방·통신 등의 필수요소를 가리켰다면, 저자가 강조하는 ‘사회적 인프라’는 도서관·학교·놀이터·공원·체육시설 같은 것부터 인도·주민 쉼터·공동체 텃밭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공적 영역으로 초대하는” 것들을 아우른다. ‘제3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갖는 상업시설도 유심히 봤다.

황폐화한 도시를 복원하는 작업이 강력 범죄 감소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한 필라델피아대 연구팀은 소규모 녹지 조성이 스트레스를 낮춰 공중 보건을 개선하고 범죄율까지 줄이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버려진 건물 주변에 텃밭을 만들었더니 주변에서 일어나는 총기 폭력 사건이 39%나 줄었다. 카페가 많은 동네는 범죄율이 낮아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동네 술집도 구경꾼이던 사람들을 참가자로 끌어들이는 힘을 갖는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의 비어가르텐이나 프랑스의 카페, 일본의 이자카야와 가라오케 등의 장소는 “사람들이 마치 집처럼 편안해하는 작고 안락하며 친밀한 공공장소, 즉 ‘제3의 공간’에 속하는 좋은 예시”다.



저자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대인 네트워크를 가늠하는 데 흔히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사회적 인프라’는 이와 다른 개념”이라며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짓는 물리적 환경을 지칭한다.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들이나 이웃들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하는 반면, 낙후한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활동을 저해하고 가족이나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든다”고 설명한다. 도시 설계에 있어 사회적 인프라가 확보된다면 해결 불가능할 것 같은 사회문제까지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의 한국어 부제는 ‘불평등과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망의 힘’이다.

저자의 주장이 미국의 사례 중심이라 국내 상황에의 적용이 가능할까 의심된다면 마침 같은 시기에 출간된 도시건축가 김진애의 ‘도시3부작’(다산초당 펴냄)을 함께 보면 더 희망적일 수 있다. ‘김진애의 도시이야기’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우리 도시 예찬’으로 이뤄진 이 책 또한 삶터의 힘을 강조한다. 수직적으로 치솟은 대단지 아파트가 소통 단절을 유발한다고 비판하는 저자는 최대한 길을 많이 만들어 길에서 바로 건물로 연결되는 유럽식 ‘가로형 아파트’를 대안처럼 제안한다. “도시가 이야기가 되면 될수록 좋은 도시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클라이넨버그가 내놓는 해답도 다르지 않다. 고립과 분열, 양극화라는 전 지구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사회를 건강하게 재건할 것인가. 도시에 답이 있다. 1만7,5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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