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부총리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여시재가 21일 서울 중구 시그니처타워에서 ‘집값, 지금 정상인가’를 주제로 연 토크 콘서트 형태의 행사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와 함께 패널로 참여했다. 주택 문제를 공론화시켜보겠다는 취지로 열린 행사였지만 이 전 부총리가 평소 가지고 있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생각이 그대로 녹아났다.
주택 수요·공급 미스매치
이 전 부총리는 “과거와는 주거의 환경이 달라졌고 수요도 달라졌다”면서 “과연 수요에 맞는 주택공급이 이뤄지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운을 뗐다.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고령화 추세가 가팔라지는 시대에 맞는 형태의 주택이 시장에 풀리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다. 이 전 부총리는 “수요와 공급에 미스매치가 있는 상황에서 집값을 잡겠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특히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 계획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의 일방적 주택공급 확대를 통한 부동산 가격 제어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시장의 기대와 가격, 부동산의 가치 간에 괴리가 나타나면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바빠진다”면서 “시장의 기대와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기대에 맞는 곳에 주택이 있어야 가치에 맞는 가격이 형성된다”고 강조했다. 수요가 있는 지역에 공급을 푸는 식으로 집값을 잡는 부동산 정책을 펴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 집값 폭등을 우려해 재건축·재개발 계획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서울 27개동(洞)을 분양가상한제 대상 지역으로 핀셋 지정하는 등 신규 주택공급을 더욱 위축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
GTX 뚫을 돈이면 도심 개발을
이 전 부총리는 애먼 데 신도시를 짓겠다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광역교통망(GTX)을 건설하기보다 도심 개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직장과 거주지 분리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들의 불필요한 교통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부총리는 “신도시를 만들려면 광역교통망을 뚫어야 하고, 여기에는 신도시를 만들 만큼의 돈이 들어간다”면서 “정책적으로 어느 선택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 돈이면 도심을 개발해 더불어 살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정부는 어떻게 하면 국가와 사회가 가진 자원을 중산층이나 사회에 갓 진입한 세대가 교통·육아 등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주거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넘쳐나는 유동성 활용해야
한국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9월 기준 우리나라 시중 통화량(M2·광의통화·평잔)은 2,852조원에 이른다. 1년 전보다 7.6% 늘었고, 2016년 3월 이후 가장 많다. 계속된 저금리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현금뿐 아니라 저축성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의 현금성 자산 형태로 시중에 넘쳐나는 것이다.
이 전 부총리는 이에 대해 “넘쳐나는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할 데가 없고, 이는 부동산 시장이 투기 시장화되는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어떠한 형태로든 유동성이 넘친다면 이것을 필요한 곳에 투입해 활용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고(高) 유동성의 배경인 저금리 상황을 주택금융 정책에 활용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 전 부총리는 “지자체가 저금리에 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민간에 맡기던 주택 사업을 일부 한다면 (부동산 시장)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며 “저금리와 고유동성 현상이 앞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 정부가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민간에 ‘신혼 주택을 지어라, 노인 주택을 지어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실질적으로 접근할 것인지 정책적 선택의 문제”라고 덧붙였다./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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