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15억달러(약 1조7,824억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 계약을 체결하며 올해 수주 목표 9부 능선에 올랐다. 글로벌 선박 발주 부진으로 경영 여건이 나빠지고 중국이 자국 발주를 앞세워 바짝 뒤쫓는 가운데 이룩한 쾌거다. 조선업계에서는 삼성중공업의 안정적이면서 협력적인 노사 관계가 수주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삼성중공업은 25일 유라시아 지역 선주와 조건부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 기간은 오는 2022년 9월까지다. 삼성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계약 세부내용은 발주처와 비밀유지 합의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삼성중공업의 이번 계약이 러시아 야말 2차 프로젝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 북부 야말반도의 육상 가스전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투자금은 약 212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중공업은 9월 이 프로젝트의 기술파트너로 선정, 최대 2.1m 두께의 얼음을 깨며 LNG를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는 쇄빙 LNG운반선 설계를 맡은 바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현지에서 선박을 건조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계약 조건 때문에 수주전에서 빠지면서 사실상 삼성중공업의 단독 수주를 점치는 상황이었다”며 “쇄빙LNG선 기준 5척 정도를 수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계약 체결로 삼성중공업은 올해 누계 수주실적을 69억달러로 늘렸다. 이는 지난해 총 수주금액 63억달러를 초과한 실적이며 올해 수주목표 78억달러의 88%까지 채운 것이다. 수주 잔량은 영국 해운 조사기관 클락슨리서치 기준 3개월 연속 세계 1위(519만CGT)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환경규제에 따른 LNG 운반선 및 원유운반선 발주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올해 수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의 이런 호실적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LNG 도입을 늘리는 친환경 정책과 자국 발주 정책을 앞세워 한국을 바짝 쫓고 있다. 중국은 석탄과 석유를 LNG로 전환하는 에너지 정책에 힘입어 지난 2017년부터 우리나라를 제치고 세계 2위 LNG 수입국으로 부상했다. 또 중국 정부는 ‘국수국조(國需國造·중국 화물은 중국 선박으로 수송하고 중국 선박은 자국에서 건조한다) 정책’에 따라 파격적인 자국 조선소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삼성중공업의 선진적인 노사 관계가 올해 안정적인 수주에 기여했다고도 평가했다. 삼성중공업 노사는 함께 영업일선에 나서며 해외 고객사의 노사 대립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했다. 11일 남준우 삼성중공업 사장과 강일남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은 고객사인 말레이시아 선사 MISC 경영진을 만나 안전과 품질을 약속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업계에서 가장 먼저 임금협상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어려운 시황에서 단합된 노사의 모습은 고객사에 신뢰를 심어주고 영업활동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의 이런 행보는 심각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국내 경쟁업체들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최근 금속노조에 가입한 대우조선 노조는 현대중공업과 합병 반대 등을 요구하며 부분 파업을 벌였고 현대중공업 노조 또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글로벌 선사들은 노사 균열로 공정·납기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가장 경계한다.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지난달 사내 소식지 인터뷰를 통해 노조의 협력을 읍소한 배경이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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