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양절 하루 전인 지난 10월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카오에 거주하는 노인 30명에게 직접 서신을 보내 ‘국가와 마카오를 사랑하는 정신을 잘 계승하고 웨강아오대만구(광둥성·홍콩·마카오 삼각주) 개발계획에 적극 참여하도록 청년들을 독려해달라’고 당부했다. 중양절은 ‘경로의 날’로 중국이 공휴일로 지정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긴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시 주석이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의 우등생인 마카오를 활용해 홍콩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고 베이징 소식통들은 전했다.
# 13일에는 마카오의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가 중국 베이징의 ‘청나라 황실정원’인 위안밍위안(원명원)에 있다가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에서 영국·프랑스 군대에 약탈당해 반출됐던 말머리 동상을 중국 국가문물국에 기증했다. 스탠리 호는 2007년 한 경매에서 이 동상을 거액에 사들인 뒤 보관해왔는데 이번에 중국에 내놓은 것이다.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된 지 20주년을 한 달여 앞두고 마카오 재계가 중국에 성의를 표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홍콩 민주화시위 사태가 6개월째 계속돼온 가운데 다음달 20일 중국 반환 20주년을 맞는 마카오가 관심을 받고 있다. 포르투갈이라는 외세의 지배를 받다 중국에 반환됐다는 점에서 홍콩과 비슷한 처지지만 마카오는 상대적으로 민주화 열기가 낮다. 카지노 등 관광산업에 특화된 마카오로서는 중국인관광객(유커) 등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큰데다 인구가 적은 도시로서 상대적으로 경제가 안정돼 있어 현상유지를 원한다는 지적이다. 차세대 산업으로 선택한 금융 등을 통해 결국 중국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전문가들은 외세에 분할 지배됐다가 1990년 말 중국에 반환됐다는 공통점과 달리 마카오와 홍콩은 차이점이 더 많다고 본다. 홍콩은 중국에 앞서 경제부흥을 이루며 자립의식을 키웠고 정치나 사회제도도 선진적이었다. 홍콩인에게는 강대국 영국의 ‘시민’이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반면 마카오는 재정적으로 부유하기는 하지만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지배세력인 포르투갈도 강대국이라고 할 수 없는 중등국가 수준이다. 전쟁으로 강탈당했다는 피해의식이 있는 홍콩에 대한 중국의 악감정과 달리 마카오는 400여년의 분리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대부분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마카오가 포르투갈령이 된 것은 중국 명나라 시절인 1557년이다. 이웃 홍콩이 영국령이 된 것보다 300년이나 빠르다.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중국에서 얻어낸 과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와 있다. 일부에서는 “해적을 퇴치한 공로로 명나라 황제에게 상으로 받았다”고 하지만 또 동아시아 무역을 하던 포르투갈인들이 정박지를 찾다가 명나라 관리들에게 뇌물을 줬다는 설도 있다. 여러 분석을 종합해보면 마카오를 지배한 포르투갈인들이 중국 중앙정부나 중국인과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본국 자체의 경제가 흔들리던 포르투갈로서는 마카오를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하겠다는 입장을 먼저 제시하기도 했다. 오히려 중국이 홍콩 문제에 집중하면서 마카오 반환 결정을 뒤로 미뤘다. 마카오의 중국 반환이 홍콩보다 오히려 2년여 늦은 1999년 12월20일에 결행된 이유다.
반환된 마카오에도 홍콩과 함께 중국의 통일전술인 일국양제가 적용됐다. 마카오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은 홍콩처럼 임기는 5년이며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과 달리 중국과의 마찰이 적었다. 우선 경제가 중국에 종속됐다는 이유가 있다. 마카오의 주된 산업은 카지노 도박을 위주로 한 관광이다.
현재 마카오 경제의 80% 이상이 카지노와 관련돼 있다고 추산된다. 마카오 관광업계는 카지노를 중심으로 호텔·리조트·테마파크 등으로 확장돼 있다. 지난해 3,500만여명이 마카오에서 카지노를 이용했는데 이들 중 70% 이상이 중국에서 왔다. 예를 들어 마카오와 중국을 잇는 세관은 아침과 저녁에 가장 붐빈다. 중국에서 건너와 하루 일정으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는 중국인들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적은 영토와 인구 때문에 어차피 ‘독립’할 수 없다는 마카오인들의 인식이 중국화 수용을 수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카오의 면적은 29.5㎢로 서울 종로구만 한 크기에 67만명이 살고 있다. 규모 면에서 홍콩의 10분의1도 안 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홍콩에서는 2003년 도입하려다 극심한 반발을 받고 무산된 국가보안법도 마카오에서는 별 탈 없이 시행되고 있다. 마카오는 이 법을 2009년 제정했다. 렁멍유 마카오대 행정학 교수는 “그동안 민주화는 마카오 정치발전의 핵심주제가 결코 아니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로서도 마카오에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 때로는 홍콩의 민주화시위대를 공격할 때도 마카오를 들먹인다. 앞서 홍콩의 중국 반환 20주년을 앞둔 2017년 장더장 당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마카오를 방문해 일국양제의 원활한 이행을 독려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적도 있다.
중국 본토와 홍콩 간 마찰이 심해진 올해 마카오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시 주석은 9월 마카오 특별행정구 신임 행정장관으로 취임한 호얏셍을 만나 “마카오의 장기적인 발전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일국양제를 성공적으로 실천해가는 새로운 장을 계속 써달라”고 요구했다. 호얏셍은 “국가보안법이 있었기에 마카오가 일국양제를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었다”고 화답했다.
지난달 말 열린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의 ‘공보(코뮈니케)’에서 “일국양제 견지에 대한 입장을 재천명하면서 홍콩과 마카오의 장기적 번영과 안정 그리고 대만과의 평화통일 기조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처럼 대만·홍콩과 나란히 마카오가 언급되지만 이는 반환 대상으로서의 같은 위치라는 의미일 뿐 마카오에 대한 태도는 홍콩과 확연히 다른 셈이다.
중국으로 반환된 후 마카오 경제는 오히려 날개를 달았다. 광저우·선전 등 인근 도시들과 경쟁 상황에 들어간 홍콩 같은 반발은 많지 않았다. 중국으로의 반환은 마카오에 거대한 관광수요를 촉발한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컸다. 다만 중국의 정책에 쉽게 좌우된다는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
세계은행(WB) 통계에 따르면 1990년대는 50억~60억달러선에서 오르내린 마카오 국내총생산(GDP)은 1999년 중국 반환을 기점으로 급성장한다. 2004년 105억9,000만달러로 100억달러선을 처음 돌파했고 2008년 209억2,000만달러에 이어 2014년에는 553억5,000만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2013년 중국에서 시진핑 정부가 들어서 강력한 반부패 드라이버를 걸며 마카오 관광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마카오에 와서 도박을 즐기는 중국인들이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관광산업이 무너지면서 2015년 마카오 경제가 무려 -18% 역성장을 했다. 이후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나 2018년 GDP가 545억5,000만달러에 그치며 2014년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마카오의 새로운 탈출구는 관광에서 벗어나 신규 산업을 키우는 것이다. 제조업 기반이 약한 도시국가로서 우선 주목한 것이 금융산업이다. 일종의 홍콩 벤치마킹인 셈이다. 중국 정부도 광둥성과 홍콩·마카오를 연계하는 웨강아오대만구 계획에 따라 마카오를 실질적으로 중국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2월 중국 정부는 웨강아오대만구를 첨단기술 중심지로 발전시켜 미국의 실리콘밸리 등과 같은 세계적인 경제권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마카오를 ‘관광 허브이자 브라질 등 포르투갈어 경제권과 교류 중심’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제시됐다. 중국 같은 브릭스 국가로서 교류가 늘어나고 있는 브라질과의 연관성이 언급된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마카오 정부도 금융산업 강화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마카오 정부가 새 증권거래소를 마카오에 설립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중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최근 중화권 매체 등을 통해 나왔다. 중국 매체에 따르면 광둥성 금융관계자가 “‘역외 위안화 나스닥’을 만든다는 기대로 마카오 정부가 증권거래소 설립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도왔다”며 중앙정부가 마카오 반환 20주년 ‘선물’로 증시 개설을 허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민주화시위 등으로 눈밖에 난 홍콩 대신 마카오의 국제금융 기능에 중국이 주목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마카오에도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고도의 자치’를 보장한 50년이 끝나는 오는 2049년이다. 그렇지만 마카오인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홍콩인들처럼 시위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마카오 인권활동가인 제이슨 차오는 “마카오인들에게 ‘민주주의를 원하느냐’고 물어보면 대개 ‘그렇다’고 대답은 한다”면서도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원하는지는 다른 질문이다. 홍콩 방식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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