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신남방 확대 본격화는 아세안 지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주요2개국(G2)’의 주도권 다툼과 맞물려 불가피한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한국의 신남방정책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아세안을 포섭하려는 미국, 아세안과 유럽·아프리카까지 연결하려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사이에서 말 그대로 ‘샌드위치’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한국이 신남방정책으로 인도태평양 구상에 동참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가 지난달 ‘한미동맹의 밤’ 행사에서 “신남방정책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과 비전을 공유한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의 군사·경제적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대중국 포위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이 한중일과 아세안 10개국 등 15개 국가가 지난 4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정문 타결을 이뤄낸 직후 ‘인도태평양 지역 관여 정책을 최우선으로 삼을 것’이라고 발표한 것도 한국이 사실상 중국이 주도한 아세안 질서에 참여했다는 데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역시 한국의 신남방정책이 일대일로의 비전과 맞닿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RCEP 협정문 타결로 한국을 비롯해 일본·호주까지 중국의 아세안 전략에 포섭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들과의 접점을 찾는 외교적 전략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남방정책과 RCEP가 ‘아세안 중심’임을 강조하는 것이 대안으로 꼽힌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국제통상학회장)는 “RCEP의 기본 정신에도 중국이 아닌 아세안이 중심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이를 근거로 미국을 지속적으로 설득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도 아세안 국가들을 자신의 의지대로만 좌우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도 이달 기자간담회를 통해 “RCEP는 중국이 아닌 아세안이 주도한 무역협정”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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