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중소벤처기업부가 장(醬)류를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할 것인지를 심의할 예정인 가운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K소스’의 세계화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인 가구의 증가로 역성장하고 있는 장류 시장에서 정부의 규제가 사업 위축은 물론 K소스 수출에도 제동을 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중기부는 다음 주 지난 9월 예고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관련 심의를 한다. 업계에서는 장류 지정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라는 얘기가 나온다.
식품기업들이 장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우려하는 것은 일단 지정되면 최소 5년간 대기업이 관련 사업을 확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은 대기업이 중소상공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였으나 오히려 시장 자체를 더욱 위축시켜 K소스의 글로벌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5년간 발 묶이면 K소스 글로벌화 ‘막막’=식품업계에서 장류는 한국 고유의 발효식품으로 균주를 이용하는 만큼 최적의 환경과 위생이 대단히 중요한 품목으로 꼽힌다. 고추장·된장 등 장류가 다른 식품에 비해 글로벌 진출이 늦었던 것 역시 미생물과 관련된 사업이어서 해외 각국이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식품 대기업들은 최근 5단계 맵기 기준 표준화, 항비만 효과를 입증한 고추장 등으로 세계 시장에 K소스를 알리기 시작한 단계다. CJ제일제당 등은 이슬람 시장을 타깃으로 고추장 할랄 인증을 위한 연구개발(R&D), 나트륨을 낮춘 고추장, 어린이 전용 K소스 등을 개발하고 있다. 실제 5년간 고추장의 수출액을 살펴보면 2017년 3,197만달러로 2013년(2,432만달러) 대비 31.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출량은 1만458톤에서 1만4,710톤으로 40.7% 늘었다. 전통 장류는 기존에는 교민 위주 시장이었으나 한류의 영향으로 비빔밥과 떡볶이 등 한국 음식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 핫소스’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식품업계에서는 어렵게 연 K소스 수출길이 적합업종 지정을 계기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스시 세계화 과정에서 간장 업체인 ‘기코망’을 지속 지원해 현재의 위상을 만들었는데 K소스는 수출 걸음마 단계에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역성장…“불필요한 규제”=장류 산업은 최근 1~2인 가구 증가와 배달 등 외식산업의 발달로 직격탄을 맞은 상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장류 전체 생산액은 2013년 7,838억원에서 2017년 7,230억원으로 7.7% 감소했다. 업태별로도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기타 소규모 영세업체 등 모든 업태에서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15년 고추장 매출이 1,014억원에서 2017년 899억원으로 줄었고 대상은 712억원에서 666억원으로, 오뚜기는 412억원에서 328억원으로 감소했다. 영세업체 합계 역시 122억원에서 93억원으로 줄었다.
업계에서는 장류 산업 불황 시기에 생계형 적합업종을 지정하는 것은 대기업은 물론 영세업체에까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황이 좋지 않을 때는 상대적으로 R&D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나 식품 전문기업이 투자를 통해 카테고리를 활성화시켜야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과 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장류가 쇠퇴하는 시기인 만큼 현재는 대기업과 소상공인이라는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시장 활성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적합업종 지정으로 장류 산업이 위축될 경우 소비자의 선택권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위생안정관리 인증인 HACCP의 경우 연 매출 100억원 이상 기업은 의무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는 기업은 인증을 시도할 여력이 충분치 않아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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