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로 자동차가 스스로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차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법과 제도는 아직 기술 발전의 속도를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제도 정비작업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도로교통공단도 올해 안에 자율주행차 도입에 따른 사회 혼란을 줄일 수 있는 윤리강령을 만들겠습니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볼법한 자율주행차가 우리 주변 도로를 달리는 날도 이제 머지않았다. 해외는 물론 국내 일부 도시에서는 이미 자율주행차의 시범운행이 시작됐다. 우리 정부는 오는 2027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율주행을 상용화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놨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더 이상 미래가 아닌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우리의 삶과 교통환경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될 자율주행차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과 제도의 정비가 필수다. 운전면허 관리에서부터 교통안전 교육·홍보·연구, 교통사고 예방을 담당하고 있는 도로교통공단 역시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염곡동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에서 만난 윤종기(60·사진) 도로교통공단 이사장은 “자율주행차가 본격 도입되면 기존의 도로교통체계는 일대 변혁을 맞게 될 것”이라며 관련 법과 제도는 물론 교통안전시설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토대로 실효성 있는 교통안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담=최형욱 사회부장 choihuk@sedaily.com
지난해 2월 취임한 윤 이사장이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공단 내에 자율주행연구처를 신설한 것이다.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앞서 도로교통의 안전 관점에서 법과 제도를 연구하고 교통안전시설과 도로 등을 점검하는 전담부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윤 이사장은 올해 초 자율주행연구처의 인력과 담당 업무를 늘려 자율주행연구센터로 확대 개편했다. 인프라연구처와 융합기술연구처도 새로 만들어진 자율주행연구센터로 흡수됐다. 윤 이사장은 “20세기의 위대한 발명품이 자동차와 컴퓨터였다면 21세기는 스마트폰과 자율주행차”라며 “자율주행차량의 기술개발 단계에 맞춰 법·제도 개선과 교통 인프라 구축을 통해 상용화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율주행연구센터는 법과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는 일뿐 아니라 자율주행 안전운전능력 실증 모델을 기반으로 한 면허시스템과 자율주행 교통허브센터 구축 작업 등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AI가 운전을 하는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에 등장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엇보다 안전이다. 운전대를 잡기 위해서는 누구나 면허시험을 통과해야 하듯 AI 역시 운전능력과 교통법규 준수능력을 검증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윤 이사장은 “AI를 운전자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실제 도로 상에서 교통신호를 제대로 인지하고 법규를 지키며 운전할 수 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며 “도로교통공단은 모든 신호체계와 교통사고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로 위 폐쇄회로(CC)TV를 통제하고 있는 만큼 자율주행차의 운전능력 검증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도로교통공단은 도심이나 농촌과 똑같은 도로환경을 조성해 자율주행차의 운전능력과 법규준수능력을 검증하는 ‘AI 안전운전능력평가 시험단지’를 전국 5대 권역에 설치할 계획이다. 윤 이사장은 “올해 초 강원도와 협약을 맺고 2022년까지 횡성에 약 50만㎡(15만평) 규모로 시험단지를 조성할 방침”이라며 “이후 광주와 새만금, 부산·경남, 대구·경북 등에도 추가로 시험단지를 만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도로교통공단은 지난달 초 경찰청·SK텔레콤과 ‘실시간 교통신호 정보제공 시스템 구축 실증사업’ 등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앞두고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번 협약으로 도로교통공단은 SK텔레콤 ‘T맵’의 소통정보를 받아 스마트 신호 운영 시스템 과제의 고도화에 활용하고 SK텔레콤은 경찰청의 교통신호 정보를 제공받아 이를 반영한 T맵 최적 경로 안내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자율주행차는 인간의 부주의나 판단 오류를 최소화한 신기술이라고 하지만 교통사고 가능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사고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지,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 부딪혔을 때 AI로 하여금 어떤 판단을 내리게 할지는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앞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예를 들어 충돌을 피하기 위해 핸들을 꺾어야 할 때 왼쪽에 노인이 있고 반대편에 어린아이가 있다면, 또 사고 나지 않으려고 핸들을 꺾을 경우 더 많은 인명피해가 예상된다면 과연 AI는 어떤 판단을 내리도록 해야 할지는 인간의 영역인 셈이다. 윤 이사장은 자율주행차 분야에서도 한발 앞서 있는 자동차 선진국 독일을 벤치마킹의 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독일은 자율주행차 도입에 앞서 AI 로봇의 원칙을 규정한 윤리강령을 만들어 실천하도록 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독일이 만든 윤리강령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점은 ‘반드시 인간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하고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라며 “자율주행차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됐지만 무엇보다 기반에는 인간이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함께 자율주행차 전문가, 사회학자, 윤리학자 등의 의견을 종합해 올해 안에 우리 실정에 맞는 자율주행차 윤리강령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리기준 마련과 함께 법·제도의 정비도 시급한 과제다. 국내 배달전문업체가 개발한 자율주행 배달로봇 역시 관련 법의 미비로 상용화 작업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 이사장은 “기술 수준은 이미 디지털화돼 있는데 법과 제도는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며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한 법 개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가 이토록 자율주행차 도입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 이사장은 교통사고 발생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매년 발생하는 교통사고 건수가 약 25만건,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23조8,000억원에 달한다”며 “교통사고 원인의 90%가 인간의 부주의나 실수에서 비롯되는 만큼 자율주행차 도입으로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면 20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자율주행차 도입과는 별개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도로교통공단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 수는 1.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명)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보행자 사망사고는 OECD 평균의 3배에 달한다. 도로교통공단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지난 2017년 4,200명에서 2022년까지 절반 수준인 2,000명대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자동차의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교통안전과 관련된 정책에 있어 미흡한 점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단속과 처벌에 앞서 무엇보다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도로 위 존중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교통문화나 시민의식도 운전자 중심의 ‘가마문화’에서 보행자 중심의 ‘마차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수레를 끄는 말은 마차 앞에 사람이 나타나면 그 자리에 정지하도록 교육받는다”면서 “마차문화에 익숙한 서양에서는 보행자를 우선하는 지금의 교통문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관대작이 타는 가마문화에 기반한 우리 정서에서는 보행자는 알아서 비켜줘야 하는 대상으로 여길 뿐”이라며 “가마를 타는 특권층을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마만 보면 피하던 문화가 여전히 우리 교통문화에 짙게 배어 있다”고 지적했다. 윤 이사장은 “그러다 보니 교통정책 역시 사람이 편히 다니는 보행자 중심보다는 차량운행의 원활한 흐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며 “교통문화와 정책 모두 운전자와 차량 중심에서 보행자를 우선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크게 늘고 있는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도 도로교통공단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만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는 2014년 207만8,855명에서 2018년 307만650명으로 매년 10% 이상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맞춰 6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도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 실제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고령운전자의 비중은 2014년 16%에서 지난해 22%로 눈에 띄게 높아졌다.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도로교통공단은 올해부터 만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기간을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줄이고 면허취득이나 갱신 전에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또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고령운전자 운전면허증 자진반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9월까지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한 65세 이상 운전자는 4만3,449명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인원(1만1,913명)의 3배를 넘어섰다.
하지만 고령운전자라는 이유만으로 운전을 못하게 유도하는 것은 이동권을 침해하는 차별적 조치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그래서 면허를 반납하는 고령운전자에 대한 이동권 보장과 심리치유 프로그램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윤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남지사 시절 교통이 불편한 도서 산간 지역 주민들을 위해 도입한 ‘100원 택시’처럼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한 이동권 보장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굳이 운전을 하지 않아도 큰 불편 없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고 느낄 때 고령운전자의 면허반납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도시와 달리 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한 농촌에서는 고령운전자의 면허반납 실적이 저조한 상황이다.
윤 이사장은 수십년간 잡아온 운전대를 내려놓을 때 생길 수 있는 상실감을 치유해주는 프로그램도 지원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심리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 운전면허를 반납한 사람들 중에는 이제 사회에서 소외됐다는 감정이 들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면허를 반납하는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와 상담을 해줄 수 있도록 관련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이사장은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CCTV를 포함한 과속·신호위반 단속장치 설치를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스쿨존 내에서 시속 30㎞를 지키자는 약속을 어길 경우 이를 단속하고 제재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스쿨존은 유명무실할 뿐”이라며 “우리의 미래와도 같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모든 스쿨존 내로 단속장비 설치를 확대하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학교 인근 도로는 줄이는 대신 보도를 넓힐 수 있도록 지역사회도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월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차량에 치여 숨진 고 김민식군과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단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일명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신청으로 국회가 파행을 겪으면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리=김현상·손구민기자 kim0123@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He is…
△1959년 전남 고흥 △1983년 동국대 경찰행정학 △2007년 고려대 정책대학원 석사 △1983년 경찰장학생 경위 임용 △2002년 충남지방경찰청 경비교통과장 △2003년 충남 서천경찰서장 △2006년 서울 혜화경찰서장 △2008년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운영실장 △2010년 충북지방경찰청 차장 △2011년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장 △2013년 서울지방경찰청 차장 △2014년 충북지방경찰청장 △2015년 인천지방경찰청장 △2018년 2월~ 도로교통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