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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장애인 수검률 분석..맞춤 의료정책 길 터

■ 박종혁 충북대 의대 교수

건보 자료 등 빅데이터 활용해 장애 유형·중증도별 연구

장애인 자궁경부암 수검률 비장애인의 71% 수준 밝혀

과학적 근거 기반으로 장비확충·수가 등 정책 방향 제시

박종혁 충북대 교수가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연구재단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은 당뇨로 인해 시각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장애는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장애 문제나 장애인에 대한 연구는 소수자나 취약집단의 문제로 치부돼 사회복지학·재활학·특수교육 등의 학문영역에서만 접근했다. 하지만 고령화로 투병기간이 길어지며 이제 장애는 보편적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2월3일을 ‘세계장애인의 날’로 정한 유엔은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를 달성하려면 장애로 고통받는 15억명의 건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도 오는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12월 수상자인 박종혁 충북대 의대 교수 연구팀이 여성에게 네 번째로 흔한 자궁경부암 수검률을 분석한 결과,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 자료와 장애등록자료를 연계해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연령을 표준화해 장애 유형과 중증도별로 분석한 결과다. 이 기간 동안 비장애인의 수검률은 21.6%에서 53.5%로 증가했지만 장애인의 수검률은 20.8%에서 42.1%로 증가하는 데 그친 것이다.

장애인의 수검률은 비장애인의 71% 수준이었으며 중증 장애인의 경우 42% 정도에 불과했다. 특히 자폐 장애(6%), 지적장애(25%), 뇌병변 장애(31%), 요루·장루 장애(36%), 정신장애(43%)를 가진 장애인의 수검률이 낮았다.



박 교수는 “이는 검진기관의 접근성, 사회문화적 접근성, 의료진의 태도 및 위 모든 상황으로 인한 장애인의 수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태도 등이 복합적 원인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검진시설과 장비의 확충, 의료진을 위한 장애인 검진수가 인상 등 정책 방향을 제안했다. 여성 장애인을 염두에 둔 맞춤형 의료정책 수립을 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 임상종양학회지’에 게재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만 해도 장애인 의료이용 실태에 대한 기초현황조차 파악하지 않았다. 장애정책이 장애에 대한 인식이 낮아 수요자가 아닌 제공자 중심이었고 우선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돌봄이나 교육·치료시설을 찾기 힘들었다. 연구자들도 장애인의 삶의 질과 건강, 보건의료 접근성 등 과학적 측정을 통한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다. 박 교수는 “장애 문제가 나와 내 가족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암 연구처럼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시기에 차이가 있지만 모든 사람은 장애를 경험한다. 정부와 대학이 장애과학에 투자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이나 영국 런던대가 장애의과학·보건장애학 관련 교과목을 개설하고 후학을 양성해온 것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장애인 복지정책을 펼 때 장애인이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해 제도를 만드는 정책 결정 과정을 갖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고령사회의 장애 문제가 커지고 있으나 장애인 건강 연구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미진해 앞으로 주요 연구주제라고 꼽은 바 있다.

박 교수는 “장애인 연구집단은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차원에서 경제학·보건학·공학 등에서 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사회의 장애 문제는 재활과 복지 중심의 사회과학적 접근과 함께 의생명과학적 접근을 통한 종합적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장애인 건강 증진을 위해 장애의과학·보건장애학의 학문적 가치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 그는 사회역학, 공중보건, 장애인 건강 연구를 통해 장애인 건강권과 의료접근성 관련 법을 제안하고 정책 방안을 제시해왔다. 과거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작성 과정에도 힘을 보태고 장애인건강권법 제정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박종혁 충북대 교수가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1층로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박 교수


[인터뷰] “장애문제, 학문적 해결 한계..다양한 연구자와 경험 나눠야”





“앞으로 재활과 복지 차원의 장애학에 더해 장애의과학·보건장애과학의 학문적 가치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박종혁(43) 충북대 의과대학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중요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근거가 미진한 장애의과학·보건장애과학의 토대가 되는 연구를 집중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충북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에서 보건정책관리학 석사와 의료관리학 박사를 받은 뒤 국립암센터 암정책지원과장 등을 거쳐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의회 총무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장애의학·보건장애학은 기초의학인 예방의학에 해당한다. 그동안 인권·재활·사회복지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장애학이 의과학·경제학·보건학·공학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추세이나 아직은 부족한 실정이다.

그 자신이 시각 장애인인 박 교수는 “예방의학은 다른 의학 분야보다 사회적 관심이 낮은데 3차 예방은 거의 연구되지 않고 있다”며 “의과학이 1·2차 예방에 집중해 장애 문제가 소외되고 있다. 임상의학교실에서 장애 유형별 연구를 분절적으로 하고 있지만 기초의학교실에서 관련 연구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1차 예방은 사전 질병 예방, 2차 예방은 질병 조기 발견과 치료, 3차 예방은 질병 후유증 최소화와 장애 이후 최상의 건강 유지를 뜻한다. 장애인의 건강과 삶의 질 측정 등을 위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방법을 함께 사용해 연구해야 하지만 그런 연구자가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박 교수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장애 유무에 따른 자궁경부암 검진 수검률 격차를 밝힌 게 의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06~2015년 국민건강보험 자료와 장애등록자료를 활용해 여성 장애인의 자궁경부암 수검률이 낮다고 밝혔다.

그는 “장애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남성 장애인보다 취약하고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처해 있다”며 “건강 증진과 의료접근성 개선, 사회정책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올해 미국 하버드대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그는 “장애 문제는 하나의 학문 분야로 해결할 수 없어 다양한 연구자들과 만나 경험을 나누고 있다”며 “하버드대의 학생 선발·채용기준에 ‘독특한 경험’ ‘다양성’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사람과 관계된 경험과 가치가 학문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평소 학생들에게 ‘좋은 보건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한 근거를 만들자’고 이야기 한다”며 “적절한 데이터를 확보해 연구하기 쉽지 않은 주제이나 모험적인 연구를 하다 보면 성과가 더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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