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화문 일대 오피스텔에서 자취하는 30대 직장인 조모씨는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 내에 있는 편의점 세 군데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오피스텔과 가장 가까운 A편의점에서는 ‘맥주 4캔 1만원’ 행사 상품을 구입해 퇴근 후 ‘혼맥(혼자 마시는 맥주)’을 즐긴다. 온라인 쇼핑이 취미인 조씨는 옷을 반품할 때도 A편의점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보니 반품하기가 여의치 않았는데 얼마 전부터는 편의점에 따로 가지 않아도 현관문 앞에 놓아두면 배송기사가 물건을 가져간다. 세탁물을 들고 편의점을 향하는 것도 ‘일상’이 됐다. 조씨의 오피스텔 근처에는 마땅한 세탁소가 없어 가장 가까운 지역의 세탁소로 대신 전달해주는 B편의점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이 친절한 C편의점에서는 전기요금·지방세 등 공공요금을 납부한다. 조씨는 “편의점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다”면서 “쇼핑은 물론이고 생활에 필요한 여러 서비스를 갖추고 있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편의점이 전 국민의 일상 속을 파고들고 있다. 대량구매가 필요없는 1인 가구에서부터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학교 앞 구멍가게와 문방구 대신 편의점을 찾는 초등학생까지. 편의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국민의 대체 불가능한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국에 5만개’라고 할 정도로 점포가 많아 접근성이 뛰어나고 이색 제품과 서비스를 발 빠르게 도입하는 감각도 편의점의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최근에는 제품의 가격경쟁력까지 갖추면서 편의점이 모두의 ‘방앗간’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나온 말이 ‘호모 컨비니쿠스’다. 영어로 편의점을 뜻하는 ‘컨비니언스 스토어’를 바탕으로 생긴 신조어다. 현대의 한국인은 ‘편의점에 가는 인간’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때 오프라인 유통점의 총아였던 대형마트가 e커머스에 밀려 비틀거리는 가운데서도 편의점은 점포 수와 매출 규모를 늘리며 성장하고 있다.
편의점은 조씨 같은 직장인 1인 가구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트렌디한 먹거리가 한데 모여 있어 소위 ‘인사이더’들은 편의점에서 가장 유행하는 제품을 구입한다. 대표적으로 알록달록한 비행접시 모양의 과자 안에 새콤달콤한 분말캔디가 들어 있는 ‘UFO캔디’와 이쑤시개로 얇은 고무막을 콕콕 찍어 터뜨려 먹는 ‘거봉젤리’는 이마트24 등의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학교와 학원·독서실 등을 오가느라 집 밖에 있는 시간이 많은 중고등학생의 경우 편의점이 분식집 등의 식당을 대체하고 있다. 편의점들이 즉석음식 무한경쟁을 벌이면서 식당에서 만들어 파는 따뜻한 음식보다 편의점 음식을 더 좋아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굿즈도 살 수 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CU는 인기 가수 방탄소년단의 이미지를 담은 교통카드를 판매하는데 주거지에 위치한 매장에서 전체 매출의 60% 이상이 발생했다. 이는 직장인들이 밀집한 오피스 상권의 매출 대비 약 7배 높은 수치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교통카드가 청소년들의 주요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고 개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교통카드를 수집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면서 “제품명 자체를 학생들의 용어인 일명 ‘급식체’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학생 소비자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의 역할은 업종의 경계를 넘나든다. 대표적으로 편의점은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카페 역할도 하고 있다. CU·GS25·세븐일레븐 등 주요 편의점 3사가 올 한 해 판매한 상품의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컵얼음과 원두커피가 상위 1~2위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편의점이 전문점 수준의 커피머신을 갖추고 있어 1,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커피를 즐기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편의점은 젊은 세대가 메인 고객일 것 같지만 의외로 40대와 50대가 가장 많은 돈을 쓴다. 바로 맥주 때문이다. 퇴근 후 집에서 캔맥주 한 잔을 마시고 싶어하는 가장들이 마트에 들러 귀가할 수는 없는 일.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는 ‘아저씨’들이 편의점 입장에서는 가장 반가운 손님이다. 동네 아저씨들에게 편의점은 ‘현대의 주막’이다. 여름철 중년 남성들이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에 간단한 안주를 놓고 맥주를 마시는 장면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요즘은 와인도 편의점에서 잘 팔린다. 편의점이 핵심 유통 채널로 떠오르면서 와인은 전문점에서 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진 것이라는 방증이다. 이처럼 와인 판매량이 늘자 이마트24는 아예 2월 와인 구색을 대폭 강화한 주류 특화매장을 선보였다. 이곳에서는 와인 100여종과 위스키, 크래프트 비어 등 30여종을 선보이고 있다.
와인 픽업 서비스를 운영하는 편의점도 있다. GS25는 오전11시까지 와인을 주문하면 당일 오후6시에 점포에서 수령할 수 있는 예약 서비스 ‘와인25’를 시작했다. GS25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나만의 냉장고’에서 와인을 선택하고 픽업할 점포를 고르면 상품 입고 문자가 고객에게 발송된다. 이후 점포를 방문해 결제하면 와인을 구매할 수 있다. GS25 관계자는 “기존에는 와인 전문매장 등을 찾아가야 했지만 이제는 GS25 와인 전문 MD가 선정한 유명 와인을 간단한 예약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면서 “우선 강남 지역 300여개 점포에서 진행하고 내년 중에는 수도권 전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톡톡 튀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의점이 최근에는 ‘착한 가격’까지 내세우고 있다. 이는 마트·e커머스가 ‘1원짜리’ 초저가 경쟁을 펼친 데 이어 편의점으로까지 가격경쟁이 옮겨붙었기 때문이다. 이미 편의점이 직접 개발한 자체브랜드(PB) 제품은 각 카테고리 내 1위로 등극했다. 소비자들이 ‘편의점표’ 초저가 아이템에 지갑을 열고 있다는 뜻이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50% 할인이나 두 개를 사면 세 개를 더 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성비 제품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에 최근 오프라인 유통 채널이 부진한 가운데도 편의점은 상대적으로 굳건하게 점포를 운영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