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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태백산맥'이 품은 건축물…남도의 근대사가 한눈에

■전남 보성 벌교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예로부터 순천·보성 잇는 교통 요지

벌교역 내리면 '보성여관'이 첫 인사

금융조합 건물·김범우 집·소화교 등

2시간 남짓 거닐면 소설이 되살아나

태백산맥문학관엔 집필 자료 전시도





‘벌교는 고흥반도와 순천·보성을 잇는 삼거리 역할을 담당한 교통의 요충이기도 했다.…모든 교통의 요지가 그러하듯이 벌교에는 제법 짱짱한 주먹패가 생겨났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벌교 가서 돈 자랑,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순천에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 가서 멋 자랑하지 말라”는 말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전라남도 보성 벌교를 이같이 묘사한다.

전남 보성 벌교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에 있는 보성여관.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남도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통상 벌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꼬막’일 것이다. 연하면서 쫄깃한 맛이 일품인 꼬막은 사실 여수만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채취돼 고흥과 순천 등지에서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유독 벌교 꼬막이 유명해진 데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꼬막이 인근 지역에서 채취되더라도 결국은 교통 중심지인 벌교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일제강점기 때부터 상업이 발달한 덕에 지역상품화를 빨리 이뤄냈다는 얘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소설에서 그려진 벌교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태백산맥’은 조정래 작가가 지난 1983년부터 6년간 집필해 완성한 작품이다. 여순반란사건이 끝난 직후부터 한국전쟁 휴전협정까지의 시기를 다룬 이 소설은 이적 논란 등 숱한 시비에 시달렸지만, 오늘날에는 한국 현대사의 다사다난했던 시기를 보듬어 분단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기념해 벌교군은 2011년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된 지점을 잇는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을 조성했다.

벌교역에 내려 200m 즈음 걸어가면 작품 안에서 ‘남도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보성여관이 행락객을 반긴다. 이곳을 시작으로 술도가, 벌교 금융조합, 김범우의 집, 소화의 집 등을 연결한 코스는 약 8㎞로 천천히 걸어도 2시간 내외면 돌아볼 수 있다. 지식인 염상진, 두 이념 사이에서 갈등한 김범우, 새끼무당 소화 등 270명이 넘는 인물의 행적은 가상의 이야기지만, 거리 곳곳에 소설에 등장한 건물들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덕에 인물들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하다.

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보성여관은 복원사업을 거쳐 2012년에 한옥과 일식 건축양식을 혼합한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다. 여관 안에는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와 함께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는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어 소설 속의 반란군 토벌대장 임만수처럼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다. 여관 주변에 있는 건물들도 비슷한 양식의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어 골목길에 들어서면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여관 건너편에는 양조장집 아들이자 지식인 청년 정하섭의 본가가 있다. 소설에 ‘술도가’로 등장한 이곳은 ‘정도가’라는 이름의 꼬막 음식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남 보성 벌교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에 있는 벌교 금융조합. 현재는 화폐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골목길을 따라 한적하게 서 있는 벌교 금융조합은 아담하게 쌓아올린 벽돌과 창문 사이로 다듬어진 돌이 박혀 있어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밋밋하지 않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송기묵이라는 재력가가 일제강점기부터 금융조합에 근무해온 것으로 묘사된다. 1918년 설립된 벌교 금융조합은 농촌지도소·벌교지소·농민상담소 등으로 활용되다 2015년 화폐박물관으로 재개관했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돌려 조금만 걸어가면 소화다리(부용교)가 기다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쇼와(昭和·소화) 6년에 만들어져서 붙은 이름으로, 등장인물 소화와는 관련이 없다. 좌우 대립 속에 수많은 사람이 총살된 장소로 작품은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겄구만이라, 사람 쥑이는 거 날이 날마동 보자니께 환장 허겄구만요’라는 구절로 당시 참혹했던 광경을 설명한다.

전남 보성 벌교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에 있는 ‘현부자네 집’. 소설의 첫 장면을 여는 이 집은 박씨 문중이 소유하고 있다.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문학관’ 오른쪽에 위치한 ‘원형상-백두대간의 염원’ 옹석벽화. 문학관을 짓기 위해 잘려나간 산의 단면을 채우고 있다.


다리를 건넜다면 마지막으로 ‘현부자네 집’과 ‘태백산맥문학관’을 들를 차례다. 소설의 문을 여는 첫 장면에 등장하는 현부자네 집은 중도 들녘이 한눈에 담기는 제석산 산자락에 세워져 있다. 한옥이 기본이지만, 일본식과 양식이 혼합돼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길 건너편에는 ‘태백산맥문학관’이 있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조 작가가 소설을 집필하기 전 자료조사를 위해 꼼꼼하게 남긴 취재 메모부터 며느리가 쓴 필사본 등이 전시돼 있다. 건물 오른쪽에는 이종상 화백의 옹석벽화 ‘원형상-백두대간의 염원’이 잘려나간 산의 단면을 채웠다. 높이 8m, 폭 81m의 벽화에는 분단 종식의 염원을 담아 지리산과 백두산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채취한 자연석 3만7,000여개가 사용됐다고 한다.
/글·사진(보성)=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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