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뇌·뇌혈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에 대한 급여기준을 대폭 손질하는 것은 과잉진료 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하 문재인 케어)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뇌·뇌혈관 MRI 촬영은 특진비 폐지, 2·3인실 급여화와 더불어 지난 2017년 8월 정부가 추진한 문재인 케어에서 대표적인 항목 중 하나다.
애초 정부는 지난해 10월 뇌·뇌혈관 MRI에 대한 보험적용을 확대하면서 연간 1,642억원 정도의 재정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매우 달랐다. 단순한 두통·어지럼 등 경증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대거 MRI 촬영을 요구하면서 정부 예측보다 70%나 증가한 연간 2,800억원의 재정이 소요된 것이다. 이번 정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뇌·뇌혈관 MRI 검사를 받은 환자 중 10~15%는 뇌신경검사 등 신경학적 검사상 증상이 없는 경증 환자로 집계됐다. 무리한 급여확대가 경증 환자의 MRI 촬영을 부추긴 셈이다.
더욱이 정부의 이번 시뮬레이션은 뇌·뇌혈관 MRI 촬영 급여화 시행 이후 6개월간의 집행액을 근거로 연간 환산추정액을 계산한 것으로 올해 연간 실제 집행액은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손영래 복지부 예비급여과장은 “통계 분석결과 급여확대 이후 대형병원보다 두통·어지럼의 경우 동네 병·의원에서의 진료비 증가율이 4~10배 높게 나타나는 등 중소형 의료기관에서 경증 증상에 대한 MRI 검사가 과도하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며 “MRI 수요에 대해 과소 추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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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부는 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2017년 9월부터 2019년 4월까지 보장성을 확대한 약 700개 과제에 대한 연간 재정추계액이 4조5,000억원이며 이 가운데 실제 집행은 4조원이 이뤄져 계획 대비 88%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MRI 등 일부 과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보장성 확대 항목이 계획된 재정 추계액 내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MRI와 같은 돌발변수가 과잉진료와 건보재정 건전성 악화를 부채질하는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당장 내년부터 척추 MRI와 흉부·심장 초음파를, 오는 2021년에는 근골격 MRI, 근골격·두경부·혈관 초음파 검사 등을 각각 급여화한다는 계획이다.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내년부터 척추 MRI까지 급여화가 적용되면 현재의 건보 시스템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며 “국민에게 필수적인 의료항목만을 제외하고 비급여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는 자궁·난소 등 여성생식기 초음파 검사의 건강보험 적용범위를 전면 확대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내년 2월부터 자궁근종 등 여성생식기 질환자가 부담하는 초음파 검사 의료비가 기존 4만7,400~13만7,600원에서 1만2,800~2만5,700원으로 최대 4분의1까지 줄어든다. 정부는 이번 조치에 따라 연간 약 600만~700만명이 건보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날 건정심은 중증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듀피젠트프리필드주’에 대한 건보 적용도 결정해 환자들은 연간 580만원에 달하는 투약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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