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부진으로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쌍용자동차가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산업은행 대출 900억원의 상환을 연장했다. 대출금 상환 연장으로 최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가 밝힌 추가 지원의 조건을 갖춘 만큼 증자 등 다양한 자금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기사 13면
25일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산은은 “당행에서 대출한 쌍용차의 2020년 만기도래 차입금은 운영자금 200억원, 시설자금 700억원 등 총 900억원”이라며 “향후 쌍용차의 영업상황 등을 감안해 산은이 만기 연장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실은 2020년 쌍용차 대출 상환계획을 산은에 질의했고 산은은 차입금 상환 연장 계획까지 추가로 답변했다.
연구개발(R&D)은 물론 운영자금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쌍용차에 산은의 차입금 만기 연장은 한 줄기 빛이 될 것으로 보인다. 11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 중인 쌍용차는 적자폭이 점점 커지고 판매부진이 회복될 조짐도 보이지 않아 내년 만기연장을 앞두고 산은에서 언급한 ‘영업상황’이 좋아지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따라 산은 관계자는 “내년 계획을 미리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쌍용차의 연구개발이 필요한 상황이고 대주주(마힌드라)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의 지원인 만기 연장이 이뤄지면 산은의 지원을 전제로 증자 등을 통한 지원 의사를 밝힌 마힌드라도 실질적인 자금투입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힌드라그룹 수뇌부는 이달 초 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과 만나 “산은이 지원에 나서면 2,000억원대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박한신·구경우 기자 hspark@sedaily.com
지난 9월 수입차인 벤츠가 국내 완성차업체인 쌍용차의 월 판매실적을 앞지르자 자동차 업계에서는 ‘언더독’으로 전락한 쌍용차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볼리의 인기에 상승하던 판매량이 경쟁모델이 출시되자마자 급감했기 때문이다.
쌍용차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 11분기 연속 적자에 빠져 있는데다 그 폭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올 들어서도 1·4분기 278억원, 2·4분기 491억원, 3·4분기 1,052억원으로 영업손실이 점점 커졌다. 부채비율 또한 2016년 166%, 2017년 190%, 지난해 218%, 올해 9월 말 286%로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 코나, 기아자동차 셀토스 등 주력 차종인 티볼리의 경쟁 모델이 대거 출시되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수출 또한 지난달에 105개월 만에 가장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 정도로 저조하다.
대출은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 쌍용차의 목을 조이는 골칫덩이였다. 회사들이 적자 때문이 아니라 유동성 부족 때문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쌍용차 입장에서는 판매부진보다 더 눈앞에 닥친 위기가 대출 상환일 수 있다.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쌍용차의 단기차입금은 올 9월 말 기준 3,033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1,782억원에서 9개월 만에 1,300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산업은행이 내년 7월 만기가 도래하는 900억원의 대출 상환을 유예해주면 그 자체로 큰 부담을 덜게 된다. 여기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상환 유예 결정은 다른 채권은행들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쌍용자동차가 산업은행에 대출 받은 금액은 약 1,900억원이다. 이 중 1,000억원은 전기차 개발을 위해 올해 받은 대출로 만기가 2024년이어서 문제가 없다. 문제는 내년 7월 만기가 도래하는 900억원이다. 판매부진에 따른 자금난을 겪고 있는 쌍용차는 최근 마련한 통상상여 200% 삭감, 인센티브 삭감, 연차수당 지급률 조정 등의 인건비 감축 자구안을 근거로 산업은행에 대출 만기 연장 등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물론 아직 산은이 대출 만기연장을 확정 지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힌드라가 추가지원의 조건으로 산업은행의 지원을 걸어놓은 상황에서 ‘검토’도 쌍용차에는 천군만마와 같다.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쌍용차 영업상황을 고려해 대출 만기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산업은행의 답변에 대해 “산업은행이 2020년에도 쌍용차가 영업활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게 지원한다는 취지”라며 “쌍용차가 지역사회와 고용 등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볼 때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출 만기 연장이 쌍용차 연쇄 지원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은행의 지원’을 전제로 자금 수혈 의향을 밝힌 대주주 마힌드라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대출 만기 연장은 지원이나 다름없는 행동으로 분류된다. 마힌드라 측은 산업은행이 쌍용차를 지원하면 2,000억원대의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에 전달한 상황이다. 이 경우 쌍용차는 2020년 한 해 동안 ‘빚 독촉’ 없이 마힌드라의 자금 지원을 업고 전기차 등 개발에 매진할 수 있다.
마힌드라 또한 쌍용차가 필요하다. 쌍용차는 마힌드라그룹 내에서 최고 기술력을 가진 회사다. 마힌드라가 생산하는 자동차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쌍용차의 연구개발(R&D) 또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쌍용차가 전기차 개발에서 뒤처지면 마힌드라 또한 친환경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갖지 못하게 된다. 기술 외적인 부분에서도 마힌드라는 매년 우수 직원들을 쌍용차로 보내 교육받게 할 정도로 쌍용차의 선진 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산업은행으로서도 많은 일자리가 달린 자동차 회사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쌍용차는 직접 고용 직원만 5,000명이 넘고 협력 업체까지 합치면 수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해고된 근로자를 수년 만에 결국 현장으로 복귀시켰던 쌍용차의 정치적 상징성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 9월 복지 축소 자구안을 마련했을 때도 쌍용차는 이를 바탕으로 마힌드라의 500억원 증자와 산업은행의 대출 만기 연장을 이끌어냈다”며 “강도가 더 센 인건비 감축을 이뤄낸 만큼 산업은행과 마힌드라가 추가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한신·구경우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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