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제도 도입 이후 지난 10년간 총 177개의 스팩이 상장했고 이 중 79개가 비상장기업을 인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량 성장주를 발굴해 코스닥시장에 안정적으로 상장시킬 수단으로 정착했다는 평가다. 다만 스팩을 통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회사는 아직 한 곳도 없어 코스닥 소형사의 상장 창구 역할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관련기사 6면
25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상장 스팩(예정 포함) 수는 총 30개로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2015년 45개 상장 이후 이듬해 12곳으로 감소했으나 이후 매년 증가 추세를 보였다. 스팩 공모 규모도 올해 2,663억5,000만원으로 전년(1,552억원) 대비 72% 늘었다.
스팩은 증권사가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모아 상장하는 페이퍼컴퍼니로 상장 이후 3년간 비상장기업을 물색하고 인수합병(M&A) 방식으로 우회 상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는 2009년 12월 도입됐다. 지난 10년간 총 177개의 스팩이 상장됐으며 스팩 합병을 통해 상장한 기업도 총 79곳에 달한다. 올해도 연말까지 총 11곳이 스팩을 통한 상장에 성공했다. 비상장기업 측에서는 까다로운 공모상장 절차 없이 손쉽게 기업공개(IPO)를 할 수 있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원금+α’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가져 인기를 끌어왔다.
다만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스팩을 통해 IPO를 한 상장사가 한 곳도 없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스팩도 2010년의 3곳 이후 전무하다. 한 국내 증권사의 IPO 담당 임원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려는 기업들은 스팩 상장보다 일반공모를 선호한다”며 “증권사들 입장에서도 굳이 스팩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유망기업 IPO 통로로 자리잡았지만...대형스팩 활성화 과제
안정적 증시입성·투자처로 인기
총 177개 상장...79개 합병 성공
초기 대형화 실패로 시총 감소세
“일반공모와 스팩합병 구분 풀어
상장심사후 자유롭게 선택케 해야”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가 막 도입된 지난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스팩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상장하는 데 주주총회 의결까지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 공모방식의 공개(IPO)보다 더 비효율적”이라는 혹평이 나왔다. 유망 비상장사의 IPO를 돕는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도입 초기인 2011~2013년에는 스팩 합병 상장이 연평균 3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도 도입 10년을 맞은 현시점에서 스팩은 IPO 시장의 또 다른 축으로 정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자들에게는 원금이 사실상 보장되면서 ‘유망주 사전투자’를 할 수 있는 투자상품으로, 비상장사·코넥스기업에는 안정적으로 증시에 입성할 수 있는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다만 스팩이 중소기업 합병 위주의 ‘미니IPO’에 머물고 있는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비상장기업도 투자자도 ‘윈윈’=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상장 스팩 수는 총 177개에 달한다. 2010~2013년 증권시장에 상장한 스팩이 30개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양적으로 성장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합병 성공률도 높아졌다. 2013년까지만 해도 합병 건수는 9곳에 불과했지만 올해까지 총 79곳이 합병에 성공했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도 도입 초반에 비해 합병에 성공하는 스팩 수가 크게 늘었다”며 “스팩이 어느 정도 정착했다는 증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스팩은 비상장기업이나 코넥스 상장 기업과의 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페이퍼컴퍼니다. 상장하기 전에 주주들을 대상으로 공모해 자금을 조달한 후 유망한 비상장 기업을 발굴, 흡수합병한 후 이들을 스팩이 상장해 있는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시장에 ‘우회 상장’시킨다. 만일 3년 이내에 피합병법인을 찾지 못한다면 곧바로 상장폐지된다. 2009년 12월 제도가 도입된 후 이듬해 3월 ‘대우증권그린코리아스팩’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2011년 8월에는 자동차부품 업체 화신정공이 에이치엠씨제1호스팩과 합병하면서 ‘스팩 합병상장 기업 1호’가 탄생했다.
◇대형 스팩 실패 이후 소형 우량 기업 IPO로 돌파구=초기에는 스팩 대형화 경쟁이 붙었지만 이는 합병 실패의 원인이 됐다. 스팩의 규모가 클수록 피합병법인의 지분가치가 떨어지는데 이는 IPO 기업 오너의 지분율을 크게 희석시킨다. 시가총액이 945억원에 달했던 대우증권그린코리아스팩도 결국 합병할 비상장 기업을 찾지 못해 상장폐지됐다. 2010년 이후에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는 스팩이 전무하다.
자본시장법상 규제로 스팩 피합병 기업의 합병가액을 지나치게 재무제표 위주로 평가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문제였다. ‘성장주’를 발굴한다는 스팩의 취지와 맞지 않았다.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한 금융당국은 스팩의 합병가액을 비상장법인과 협의해 정할 수 있게끔 규제를 완화했다.
스팩이 다시금 ‘붐’을 일으킨 것은 2015년이었다. 증권사들은 ‘미니 IPO’ 창구로 스팩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에 합병 상장에 성공한 스팩의 평균 시가총액은 2013년 251억원에서 올해 102억원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스팩 상장한 기업의 합병 당시 시가총액도 2015년 1,155억원에서 2019년 658억원으로 내려갔다. 한 증권사의 IPO 담당 임원은 “2010년도 초기에 유가증권시장에서 스팩 수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증권사들이 코스닥의 소형 스팩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미니 스팩’이 주류가 됐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주식시장 흐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IPO를 진행할 수 있는 방편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일반 공모와 달리 스팩 합병상장을 이용하면 스팩의 자본금을 십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팩은 주가 변동이 심하지 않아 시황과 관계없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공모가를 산출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올해 스팩 합병으로 상장한 한 기업의 대표는 “올해 장이 좋지 않아 공모 리스크도 있다 보니 코넥스 상장사들 사이에서 ‘스팩을 통해 상장하자’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저금리 상황에서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으면서도 사실상 IPO 공모주 투자까지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졌다. 합병에 실패해도 투자원금에 금리를 1.5~2%씩 붙여 돌려준다.
우량기업과 합병할 경우 고위험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부각됐다. 특히 2014~2015년을 기점으로 스팩 발기인으로 참여한 증권사들이 RFHIC와 콜마비앤에이치 등 시가총액이 2,000억원대에 달하는 우량기업을 합병하는 데 성공하면서 투자자들의 기대도 높아졌다. RFHIC는 지난 2017년 9월 NH스팩8호와 상장한 후 현재까지 주가가 349% 올랐으며 콜마비앤에이치는 2014년 7월 상장 이후 현재까지 주가가 총 5배 상승했다. 반면 액션스퀘어처럼 합병 상장 이후 주가가 87.2%나 하락한 곳도 나타났다. 시가총액이 5,000억원에 달하며 스팩 피합병 기업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바디텍메드는 상장 이후 주가가 52.8% 내려가기도 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스팩은 복권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일반 공모, 스팩 합병 구분 규제 풀어야=업계에서는 스팩이 꾸준히 발전하려면 일반 공모와 스팩 합병을 구분하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유연한 IPO 전략을 짤 수 있게끔 상장심사 이후 일반 공모와 스팩 합병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규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코스닥과 달리 국내 유가증권시장 IPO가 부진하면서 ‘미니 스팩’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궁극적으로 대형 인수합병(M&A)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다 보니 대형 스팩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스팩의 기업 실사 책임을 높이되 스팩 합병 후 피합병법인의 특허권·영업권을 그대로 보장해주는 등 M&A상 규제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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