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1차 무역합의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투자자금이 위험자산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가운데 이달 국제구리가격 상승 폭이 최근 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닥터 코퍼(Dr.Copper)’로 불리며 경기 선행지표로 꼽히는 구리 가격을 비롯해 유가 등 원자재값이 뛰자 글로벌 경기 반등에 따른 한국의 수출회복에 대한 기대도 커지는 분위기다.
29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지난 26일 구리 선물은 파운드당 2.8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달 들어 약 7% 오른 것으로 월간 기준(종가 기준)으로는 2017년 12월(7.8%)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미국과 중국이 1차 무역합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줄었고 주요국의 완화적 통화 기조도 유지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탄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니켈도 톤당 가격이 지난달 17.9% 하락했지만 이달 약 1.37% 오르며 반등에 성공했다.
통상 구리 가격의 추이는 경기 선행지표로 해석된다. 구리는 제조업 전반에 쓰이는 원자재로 경기가 호조세를 보일 때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뛰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의 구릿값 상승은 글로벌 경기회복의 의미 있는 시그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출단가 인상으로 이어져 국내 수출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반등에 따른 수요회복과 원자재 가격 오름세는 수출단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국내 수출경기의 반등세를 키울 것”이라며 “수출물량과 가격의 동반상승이 국내 수출경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도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지난 27일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1.7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국제 유가는 이달 들어서만 약 11.8%가 상승했다.
원자재가격이 호조를 보이면서 이에 관련 기업과 상품에 투자하는 펀드 수익률도 껑충 뛰어 오른 모습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천연자원펀드는 최근 한 달 간 4.18%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된다. 이는 에프앤가이드가 분류하는 테마형 펀드 가운데 한 달 구간 수익률에서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원자재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도 한 달 수익률에서 4.17%를 나타내며 그 뒤를 바짝 따라간 양상이다.
이 같은 원자재 강세장은 미중 무역 1차 합의 이후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의 완화로 글로벌 실물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12월은 원자재시장과 위험자산의 반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미중 무역합의와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유입되면서 경기에 민감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유가의 경우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 규모를 기존보다 50만 배럴 늘리기로 한데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이 여전한 것도 가격 상승의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 증권가는 원자재 강세장이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다. 박 연구원은 “1단계 미중 무역합의에 따라 글로벌 교역 및 제조업 경기가 정상화할 것으로 보이고 달러 약세 가능성도 있어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무역 합의 이후 중국 수출의 정상화가 원자재 수요증가로 이어질 수 있고 중국 정부의 유동성 공급과 인프라 투자 확대 등 재정 정책 강화도 원자재 가격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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