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패션·뷰티업계는 과거와 미래 사이를 끊임없이 오고 갔다. 아날로그 감성에 젖어드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환경 보호에 앞장섰다. 또 브랜드의 존속을 위해 소비자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경험 마케팅을 펼치고 미래 먹거리인 ‘웰니스’ 시장에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일본 브랜드에 대한 불매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돼 토종 브랜드가 반사이익을 누리기도 했다. 2019년 패션·뷰티업계의 키워드를 ‘RENEW’로 요약했다.
◇복고의 재해석(Reinterpretation of retro)=중장년층에게는 그리운 옛 시절에 대한 향수를,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복고 감성이 유행했다. 특히 올해는 과거로 회귀하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옛것에 현대적 감성을 덧입힌 ‘뉴트로(new+retro)가 대세를 이뤘다. 휠라에 이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헤드, 엘레쎄 등의 패션 브랜드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엘레쎄의 경우 올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0% 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제품 단위로 보면 아노락, 벨트백(힙색), 숏패딩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뉴트로는 브랜드 리뉴얼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올해 서른 살을 맞은 ‘빈폴’은 대대적인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하며 뉴트로 트렌드를 최대한 활용했다. 빈폴 고유의 체크 패턴을 요즘의 감성으로 재해석하고, 1960~1970년대 한국 건축의 특징을 살린 매장도 선보였다.
◇친환경(Eco-friendly) 경영에 속도=생산과 폐기가 도돌이표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소비재 시장에서 친환경 경영은 패션·뷰티업계가 안고 가야 할 숙제다. 게다가 최근에는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윤리적 기대치에 부응해야 했다.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진정성 있는 광고로 유명한 미국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올해도 국내에서 꾸준한 인기를 끌었고, 노스페이스는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한 ‘에코 플리스 컬렉션’을, 나우는 비인도적인 털 채취방법이 아닌 침구류에서 모은 다운으로 생산한 패딩을 선보였다.
생활용품과 화장품업계도 친환경 행보에 동참했다. LG생활건강은 환경에 해로운 미세플라스틱을 배제한 섬유유연제를 출시했고, 아모레퍼시픽은 향후 3년간 플라스틱 공병을 매년 최소 100톤 재활용하겠다며 글로벌 환경 기업 테라사이클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거센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No japan)=지난 7월 초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되자 국내 소비자들은 일본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다. 대상은 유니클로, ABC마트, 데상트 등. 특히 유니클로의 모기업인 패스트리테일링그룹의 한 임원이 국내 불매운동을 두고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뜨거운 불매운동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유니클로의 광고도 문제가 됐다. 광고에 등장하는 소녀가 할머니에게 “제 나이 때는 옷을 어떻게 입으셨나요?”라고 묻자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고 답하면서 위안부 피해자를 모독하고 불매운동을 비하하는 의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자회사의 혐한 발언에 대한 논란으로 일본 화장품 브랜드 DHC도 보이콧 목록에 포함됐다.
일본 브랜드는 실적 하락을 피해가지 못했다. 유니클로의 국내 운영사인 에프알엘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5% 감소했다. 불매운동 기간이 두 달(7~8월)만 포함됐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브랜드 경험(Experience) 강조= 제도권 브랜드를 위협하는 신생 패션, 화장품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했다. 특히 브랜드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문을 열었다. 아모레퍼시픽은 다양한 자사 제품을 자유롭게 사용해볼 수 있는 ‘아모레 성수’를 오픈했다. 제품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이곳의 특징.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가 새롭게 문을 연 콘셉트 매장 ‘솟솟상회’ 청계산점에서는 코오롱스포츠의 상품을 직접 입고 빌릴 수 있는 렌탈 서비스도 제공한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등산에 필요한 장비를 빌릴 수 있다.
◇워라밸 트렌드에 웰니스(Wellness) 시장 성장=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의 합성어인 웰니스도 올 한 해의 화두 중 하나였다. 웰니스를 중시하는 기조가 자리 잡으면서 패션업계에서는 레깅스, 트레이닝 팬츠 등 일상복처럼 입을 수 있는 운동복인 애슬레져(athleisure)룩이 유행했다. 요가복계의 샤넬로 불리는 ‘룰루레몬’은 한국에 첫 매장을 내며 국내 소비자를 공략하기 시작했고 국내 브랜드 ‘안다르’는 요가복의 대명사로 우뚝 섰다. 안다르의 올 한 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2배 증가한 800억원으로 예측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주52시간 근로제가 정착하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요가, 필라테스 등 건강한 취미활동을 꾸려나가는 인구가 늘었다”면서 “일상에서도 운동복을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애슬레져 시장은 내년에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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