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도 제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았고, 50대도 계획대로 가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제가 느끼고 있는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가수 양준일(사진·50)은 12월31일 데뷔 28년 만의 첫 공식 팬미팅에 앞서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아내도 제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방송에서 처음 봤다. 메이크업을 받은 채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못 알아보고 전화번호 달라고 할 거 같다”고 웃으며 “몇주 전까지도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아직 저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재미교포인 양준일은 지난 1991년 ‘리베카’로 데뷔해 당시 생소했던 ‘뉴 잭 스윙’ 등의 장르를 선보였다. ‘가나다라마바사’ ‘댄스 위드 미 아가씨’ 등의 대표곡을 남겼지만, 대중으로부터 폭넓은 인기를 얻지 못한 그는 비자 문제로 갑작스럽게 가요계를 떠나 미국 플로리다의 한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며 지금껏 생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뉴트로(New+retro) 열풍을 타고 유튜브 ‘온라인 탑골공원’ 등에서 시대를 앞서 간 패션·댄스·음악 스타일이 재조명받으며 양준일은 데뷔 28년 만에 ‘제1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지난 6일 JTBC 음악 예능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한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7,000명이던 공식 팬카페 ‘판타지아’ 가입자수는 31일 기준 5만5,000명을 넘어섰다.
양준일은 약 30년 만에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데 대해 “감히 다른 사람들이 주는 사랑의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함부로 생각하다 보면 자신만의 공식이 나올 것 같고 그게 사랑받는 이유를 오히려 해칠 것 같다”고 정리했다. 이어 그동안 기다려온 팬들에 대해 “그동안 겪어온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팬들이 있다고 들었다”며 “그런 팬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말도 없이 사라진 저도 미안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양준일은 향후 활동과 무관하게 한국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는 “미국으로 떠날 때만 해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한국에 살지 않는 게 낫다고 스스로 설득하려 했다”면서 “한국에서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언제나 저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대해주던 분들이 있다. 그 따뜻함을 기억하기에 항상 돌아오고 싶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가수로서는 당분간 새 곡을 작곡하기보다 이전에 발매했던 곡들의 가사를 다시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부연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수려한 외모로도 화제가 된 그는 자신의 동안 유지 비결에 대해 미국에서의 서빙 경험을 꼽았다. 그는 “하루 14시간 서빙을 하는데 바쁜 날은 16㎞를 걷더라. 점심을 많이 먹으면 졸리니까 계란 몇 개만 먹고 일을 하다 보니 살이 찌지 않은 거 같다”고 말했다. 패션 감각에 대해서는 “타고난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슈가맨’ 양준일의 다음 계획은 책 출간과 앨범 재발매다. 양준일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글로 표현하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책을 집필 중”이라면서 “또 이전 곡들을 모아 재편곡과 녹음을 거쳐 팬들이 피지컬 앨범을 쥘 수 있게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원하는 것은 언제든 바뀝니다. 10대 때 자전거, 20대 때 차를 원하던 것이 계속 이어지진 않죠. 50대가 되어 K팝 스타가 되는 것도 원했던 일이 아닙니다. 언제든 현실에 무릎 꿇을 수 있으면 마무리가 되고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여유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높은 관심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실망 모두 그때 받아들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려놓는 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점점 더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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