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가 무력사용을 공언하며 비핵화 협상이 최대위기를 맞은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할아버지인 김일성 전 주석 ‘따라하기’에 열중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체중을 늘리고 중절모와 뿔테 안경을 쓰는 등 김일성 전 주석과 닮은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검은색 인민복과 흰색 재킷을 번갈아 입은 모습은 김 전 주석을 떠올리게 했다.
김정은, 김일성 따라하기 속내는
한해에 두차례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신년사 없이 12월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대내외 노선을 밝힌 것은 63년 전 김 전 주석의 행보와 너무 닮아있다.
이는 사회주의 강대국이었던 소련의 압력을 극복했던 김일성처럼 자신도 ‘초강대국’인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김 위원장의 결연한 의지로 해석된다. 김 전 주석은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집권 후 최대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자신의 통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스탈린 사망 후 집권한 흐루쇼프 등 소련 지도부는 1956년 북한에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뜻하는 중공업 우선 정책에 대한 포기를 강요했다. 당시 김일성 정권의 권력 핵심에 있었던 최창옥·박창옥 등 ‘연안파’와 ‘소련파’는 소련을 등에 업고 김 주석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김 주석이 소련의 요구를 거부하자 이들은 김 주석의 외유 중 그를 축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모의는 사전에 발각됐고 김 전 주석은 동유럽 사회주의국가 순방 중 급히 귀국했다. 그는 8월 전원회의를 열고 소련파를 제거해 일인 지배체제의 토대를 마련했다. 김 위원장은 현 정세를 8월 종파사건에 준하는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미국의 압박에 대비하기 위해 1년 8개월 만에 ‘경제·핵 무력 병진 노선’의 회귀라는 새로운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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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구상하는 새로운 길은?
김 위원장은 사실 전원회의 보고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 노선으로 ‘정면돌파’를 강조하면서도 초점은 국내 경제 발전에 맞췄다. 올해는 특히 김 위원장이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마무리되는 해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할 획기적인 성과가 필요하다. 김 위원장이 전원회의에서 경제 부문을 ‘침체’, ‘타성에 젖은’ 등 강한 표현을 쓰며 지적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전원회의 결정서에 명시된 순서로만 보면 전략무기 개발보다 경제발전의 비중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 정권 입장에서 내부적으로는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가시적 성과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 의미 있는 대목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는 1956년 종파사건을 통해 권력기반을 다진 후 경제 총력전을 통해 자신의 통치체제를 굳건히 한 김 전 주석의 정책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 주석은 1956년 8월 전원회의에 이어 그해 말 다시 ‘12월 전원회의’를 열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혁명적 군중노선’(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라는 관점에서 대중을 불러일으키는 노선)을 선언한 후 북한의 호황기를 상징하는 ‘천리마운동’이 시작됐다. 실제 6.25 전쟁으로 무너진 북한 경제는 급격히 성장해 김 전 주석은 북한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정권의 통치기반을 강화했다.
김 위원장은 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확고해 대외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김 전 주석과 달리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라는 큰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그는 이에 대한 처방전으로 관광사업 등 중러와의 교류협력을 통한 경제발전 구상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스스로 정한 연말 시한이 지났음에도 대화 판을 유지하는 것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김 위원장이 대화 판을 이탈할 경우 미중 무역분쟁 등에서 중국의 대미 협상 카드로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 매체들이 김 위원장에게 연하장을 보낸 각국 지도자를 소개하며 중국을 가장 먼저 호명한 것도 중국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다행히 중국이 북한의 고강도 도발 시사에 자제를 요청한 만큼 김 위원장의 ICBM 도발을 통한 북미 비핵화 협상 판 이탈을 막을 지 주목된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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