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한 ‘가명정보’를 통해 데이터 활용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힌 ‘데이터 3법’이 9일 발의 1년여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금융·헬스케어·정보통신기술(ICT) 등의 분야를 망라하고 다양한 신사업과 개인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소비자는 전 금융권에 흩어진 개인 신용·소득·지출정보를 모아 맞춤형으로 재무상태를 관리해주는 서비스는 물론 비금융정보까지 활용해 정교한 신용평가를 받을 수 있다. 구글·애플 같은 해외 기업이 이미 실시하고 있는 맞춤형 타깃마케팅을 국내 기업도 할 수 있게 되고 이종산업 간 데이터를 결합한 새로운 헬스케어 서비스 설계도 가능해진다.
데이터 3법은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의 이용·보호에 관한 법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서도 모법(母法)에 해당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의 핵심은 가명정보 개념을 도입하고 상업적 목적을 포함한 통계 작성·연구 등을 위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가명정보는 이름·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암호화해 추가 정보가 없으면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처리한 것이다. 기존 개인정보보호법에도 ‘익명정보’라는 개념이 있었지만 활용범위에 대한 해석이 모호해 사문화된 상태였다. 더욱이 이미 수집한 개인정보라도 처리 목적이 달라지면 다시 이용자에게 일일이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해 신규 서비스 출시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포괄적인 약관 동의 방식과 사후 동의 절차를 널리 활용하는 미국·유럽·일본 등 해외 사례와 견주면 빅데이터 활용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번 법 개정으로 가명정보를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우선 새로운 데이터금융 산업 출현이 가능해진다. 본인 신용정보관리업인 ‘마이데이터’ 산업이 대표적이다. 개인이 데이터 활용을 허락하면 핀테크 업체, 카드사 등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개인맞춤형 재무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소비자의 자금흐름을 분석해 A은행 계좌에 잔액 부족이 예상될 경우 B은행으로부터 자금이체나 신용대출을 제안하는 서비스도 선보일 수 있다. 카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있어도 쓰지 못했던 비식별 정보들을 활용한 개인지출관리 서비스나 훨씬 정교한 맞춤형 상품 추천·설계 서비스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됐던 개인정보 유출·도난 등을 방지하기 위해 개정안은 3개 법에 나뉘어 있던 개인정보 관리·감독체계를 일원화했다. 앞으로는 국무총리 소속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된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관리·감독 기능을 전담한다. 또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징벌적 책임을 지워 정보처리자가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지도록 했다.
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은 빅데이터 활용 분야에서 이미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상황”이라며 “개인정보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신산업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만큼 국내 산업 전반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날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0’에 참석 중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페이스북에 “만세! 데이터 3법 통과 !”라는 글을 올리며 감사를 표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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