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다. 이 중 에너지 부문의 변화는 특히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석탄·천연가스·원전 등은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기 위한 시대에는 필수적인 에너지원이었다. 하지만 사회발전이 양적 팽창에서 질적 성장으로 이동하면서 재생에너지·수소 등의 클린에너지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지속 가능한 인류의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로 기후변화가 부상하면서 클린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은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에너지원의 변화는 이에 기반한 모든 산업의 변화를 유발한다. 옛 에너지원에 기반한 대한민국 산업들에 새로운 리스크가 생긴 것이다.
유럽연합(EU)의 신임집행부는 오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 순 제로’를 달성하는 것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그린 딜을 통해 저탄소 산업으로 이행하게 된다. 전력은 재생에너지를 기본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수소를 저장장치로 이용할 계획이다. 내연기관차는 전기차와 수소차로 대체된다. 항공·철강·화학 등 탄소배출을 유발하는 모든 산업은 배출저감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
문제는 EU의 이러한 노력이 역내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1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한 ‘탄소 국경세’ 때문이다. 수입되는 물품들에 대해 탄소배출을 추적해 EU의 기준을 넘어가면 탄소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면적인 시행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탄소배출 축소를 선도하면서 약화된 자국 업체들의 경쟁력을 보상해줄 길은 해외 업체들에도 동일한 의무를 부과하는 방법밖에 없으므로 실제 이행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국가이고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한국의 대부분 산업이 탄소 장벽에 가로막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환의 시대가 동반하는 위기와 기회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기차 산업이다. 탄소배출을 낮추기 위한 정책에 발맞춰 최소 2025년까지는 전기차 시장이 연평균 3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배터리 공급업체인 국내의 관련 업체들은 대표적인 수혜주다. 2027년부터는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이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커질 것으로 판단한다. 특히 올해부터 수요의 중심인 EU에서 신규 대중화 전기차 모델들이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가면서 국내 업체들의 성장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내 내연기관차들에 연계된 업체들은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전기차의 부품 수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30~40% 작기 때문이다. 또한 엔진과 관련된 애프터마켓도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국내에 내연기관차와 관련된 직접 고용인원만 약 30만명에 달한다. 내연기관차의 축소로 인한 공백을 전기차·배터리 산업 육성으로 보충하는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환이 기회가 되는 산업에 투자하고 위기에 처한 업종들은 투자를 축소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해외의 대표 업체들의 주가에 선반영되고 있다. 전기차 관련주인 테슬라·CATL, 풍력 관련 업체인 베스타스·외르스테드 등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전환의 흐름에 뒤처진 국내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약한 상태이다. 역으로 보면 국내시장의 전기차·재생에너지 등에 관련된 업체들이 그만큼 저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좋은 투자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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