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위 김 업체인 ‘코아사그룹’이 한국에 800억원대의 대규모 직접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K푸드 대표종목인 재래김을 두고 한일전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김산업연합회 등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본 나고야에 본사를 둔 일본 1위 김 가공·유통기업 코아사그룹이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에 800억원을 투자해 대규모 김 가공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지난 1868년 일본에서 설립된 코아사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싱가포르·대만에도 현지법인을 설립해 국제 김 시장에서 손꼽히는 글로벌 플레이어로 일본과 중국에서 김 유통·생산 1위 업체다.
전 세계에서 김 양식이 가능한 나라는 한중일 3개국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웰빙식으로 부상하는 김을 놓고 벌어지는 주도권 전쟁이 치열하다. 코아사가 공장을 활용해 생산뿐 아니라 원료수매까지 영역을 확장할 것으로 점쳐지면서 국내 김 시장의 주도권이 자칫 일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국내 김 시장은 대부분 양식어가와 가공업체가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해 글로벌 선두 업체가 국내 시장에 뛰어들 경우 단기적으로 국내 김 산업 생태계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코아사가 김 가공공장 설립에 들이는 800억원은 위협적인 수준의 액수다. 영세한 국내 김 업계의 상황을 고려하면 예상을 뛰어넘는다. 코아사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약 1만7,900㎡ 부지에 김 가공공장을 설립해 국내 김을 가공한 뒤 전량 수출할 계획이다. 표면적으로는 김 가공공장이라고 하나 업태상 가공뿐 아니라 김 원료 수급으로 이어지게 되고, 글로벌 자본력을 무기로 수급가를 조금이라도 높이게 되면 국내 영세업체는 김 원료를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국내 김 시장의 70% 이상을 영세업체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코아사의 자본력 앞에서는 맥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즉 김 산업 생태계 파괴가 불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김 시장은 한중일 시장 중 유일하게 김 양산과 양산된 것을 마른김으로 만드는 과정, 마른김을 1차 원료로 가공하는 과정이 정확히 분업화된 생태계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김 업계를 쥐락펴락하는 코아사가 현재는 가공 후 수출이라고 얘기하지만 국내 김 업계를 수직계열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중국 김 시장 잠식 과정과 코아사의 부산경제자유구역 진출은 닮은꼴이다. 코아사는 1990년대부터 중국으로 거점을 넓히며 중국을 일본 김 수출의 전진기지로 만들었다. 일본 자본으로 육성된 중국 김 시장은 한때 저가를 앞세워 글로벌 김 시장에서 가성비로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균일하지 않은 제품력 때문에 2016년 중국연안 오염 이슈가 나오면서 주춤해졌다. 결국 글로벌 김 시장의 승패는 한국과 일본의 경쟁에 달린 셈이다. 일본은 스시와 김을 묶은 마케팅을 일찌감치 선보이면서 ‘김=노리(일본어로 김)’로 글로벌 시장을 선점했다. 국내 김 산업은 2016년 중국이 주춤한 사이 우수한 제품력으로 수출량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정부도 김 산업 발전방안에서 오는 2024년 10억달러 수출을 목표로 김을 식품의 반도체로 키운다는 전략을 밝히기도 했다. 김은 2010년 1억달러를 달성한 후 급격히 성장해 2017년 5억달러를 넘어섰으며, 2019년 수출 5억8,000만달러로 3년 연속 수출액 5억달러를 달성함과 동시에 수출품목 1위인 참치를 넘어서는 성과를 냈다.
이번 코아사 투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 등 부처 간 이견이 뒤섞인 사안이기도 하다. 산업부와 경남도의 경우 300명 고용, 800억원 투자를 경제논리로 접근해 승산이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해수부는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효용이 있을지 몰라도 미래가치가 더 큰 김 산업의 주도권을 일본에 내주는 근시안적 접근이라고 보고 있다. 김 산업이 이제 국제무대에서 ‘노리’가 아닌 ‘김’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며 K푸드 대표주자로 자리잡아가는 와중에 오히려 일본 자본이 한국 김 산업을 잠식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산업연합회도 지난해 말 열린 이사회에서 정한 코아사의 국내 직접투자 반대 입장을 해수부에 이달 중 전달할 계획이다. 김산업연합회와 해수부 등은 이르면 이달 말 코아사의 투자에 대해 관련 업종과 지역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한다. 코아사 투자계획은 양해각서(MOU) 단계로 의견 청취 후 확정된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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