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국내 미술업계는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정부가 개인 컬렉터의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려 한다고 알려지면서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개인 컬렉터가 판매한 작고한 작가의 6,000만원 이상 미술품(회화·골동품)만 기타소득으로 분리해 양도세가 부과된다. 그런데 개인 컬렉터의 반복적이고 규모가 큰 미술품 양도에는 사업소득을 매길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집단 반발한 것이다. 결국 정부는 올해 시행령을 개정해 6,000만원에서 1억원 이하 미술품의 양도세 부담을 줄여주기로 하는 등 한발 더 물러섰다.
미술품은 부동산·주식 등 여타자산과 달리 가치 산정이 쉽지 않다. 감정평가가 주관적이고 거래기록도 없어 깜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나마 경매회사를 통해 거래되는 미술품은 시장가격이 공개되지만 화랑이나 개인 간 거래는 가격은 물론 거래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미술품 가격과 유통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16일 김영주 더불어민주당의원실과 국세청에 따르면 개인 컬렉터가 판매한 미술품에 양도세 과세가 시작된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과세 기준연도)까지 5년간 과세총액은 148억원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개인 컬렉터가 판매한 미술품은 4,402억원 규모다. 미술품 거래규모에 비해 양도세가 턱없이 적은 것은 사업소득(46.2%)이 아닌 기타소득(4.4%)으로 과세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도세 과세 인원 및 건수다. 2013년 94명(106건), 2014년 129명(131건), 2015년 190명(290건), 2016년 213명 (321건), 2017년 229명(352건) 등 연평균 171명(240건)에 그쳤다. 이마저도 화랑과 경매업체를 통한 양도세 납부대행이 대부분으로 직접 양도세를 낸 개인은 5년 동안 고작 118명(176건)이었다. 각각 전체의 13.8%(14.6)%에 불과하다. 정부가 1990년 양도세 과세 방안을 밝힌 후 여섯 차례의 시행유예와 한 차례 법안폐기 끝에 2013년부터 과세해왔지만 여전히 ‘무늬만 과세’라는 지적이다. 국세청의 미술품 양도세 과세 현황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 미술시장 실태조사(2018년 기준)’를 보면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4,482억원 규모다. 미술계에서는 거래가 파악되지 않는 개인 딜러를 통한 개별거래 같은 블랙마켓까지 포함하면 전체 시장 규모가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문체부가 투명한 미술품 거래를 위해 2017년 ‘미술품의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려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미술업계의 반대와 부처 건 이견으로 흐지부지됐다. 작년 2월 김영주 의원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역시 국회 파행으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폐기될 처지다.
경매에선 200만원, 화랑에선 3,000만원…같은 작가도 천차만별
■가격 산정·유통 과정 문제 없나
평판·주제·재료·전시이력 등
작품가격 평가 요소 다양·복잡
정량평가 아닌 주관적 평가 일쑤
같은 작가라도 경매·화랑 달라
미술시장정보시스템 운영하지만
경매만 등록, 개인간 거래는 전무
정확한 작품유통 현황 알수 없어
주 1회꼴로 열리는 온라인 미술품 경매에 30년 이상 활동한 중견미술가 A 작가의 작품이 나왔다. 가로세로 1m에 달하는 50호짜리 유화로 추정가는 200만~500만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갓 데뷔한 신진작가의 작품값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최정상급 미대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해외 전시와 각종 수상이력도 풍부한 A 작가의 같은 크기 작품을 화랑에서 구입할 때는 3,000만원을 내야 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근본적으로 미술품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A 작가의 같은 크기 작품이라 해도 제작 시기에 따라, 작품 소재에 따라, 재료와 기법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지난달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53억원(수수료 포함)에서 팔린 ‘우주 5-Ⅳ-71 #200’를 비롯한 김환기의 1970년대의 전면 점화(點畵)는 100호 기준 20억원 이상에 거래되는데, 점의 배치 등이 이루는 조형성과 색채 같은 차이에 의해 45억~85억 원까지 가격 차를 보인다. 항아리와 꽃 등이 등장하는 1950년대 반구상 작품은 가장 비싸게 거래된 것도 40억원을 넘지 않는다. 점화라고 모두 비싼 것은 아니라서 크기에 따라 2억원 선에 팔리기도 하고, 신문지에 그리거나 작은 스케치북에 그린 드로잉이라면 수천만원 대에 구입할 수도 있다. 캔버스에 그린 유화가 종이에 그린 수채화보다 항상 더 비싼 것도 아니다. 발레 그림으로 유명한 에드가 드가의 경우 종이에 그린 파스텔화가 유화보다 더 비싸다.
미술품 유통 시장이 소위 ‘깜깜이’로 불리는 것은 이처럼 정찰가격이 없기 때문이다. A 작가 작품의 경우 화랑이 턱없이 비싸게 판매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경매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공개 시장인 경매에서는 비교기법(comparable setting)으로 그림값을 매긴다. 가능한 그 작품과 가장 유사한 과거 거래기록을 찾아 추정가를 정한다. A 작가는 과거 비슷한 유형의 작품이 경매에 출품된 적이 없어 마치 처음 선보이는 ‘신인급’으로 추정가가 낮춰진 것이다. 경매회사는 기존의 화랑 전시가격을 참조했지만 A 작가의 작품 중 선호도가 높은 1980년대 작품이 아닌데다 급매물 격인 온라인 경매에 출품됐기 때문에 가격이 더 낮게 책정됐다.
기존 경매 이력이 없다고 A를 ‘투자가치 없는 작가’로 판단할 수도 없다.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경우 컬렉터들은 쉽사리 작품을 내놓지 않고 오래 소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에르메스 미술상, 이중섭 미술상 등 권위 있는 미술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을 경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까닭이다. A 작가의 경우 미래가치에 해당하는 예술성은 높지만 현재 경매 이력이 미진했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장식성이 없어 고객 수요도 평가가 낮았다.
미국감정가협회(AAA) 등 권위 있는 해외단체를 비롯해 국내 경매사·화랑이 미술품 가격평가에서 고려하는 요소는 △작가 평판 △창작 시기 △주제 △작품재료 △크기 △서명 △작품양식 △완성도 △소장 이력 △전시 이력 △희소성 △참신성 △시장 상황 △수요 트렌드 등 다양하고 복잡하다. 정량평가가 어려운 ‘전문가의 안목’이 필요하다 보니 ‘아는 사람만 아는’ 정보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름값’이 없는 신진작가의 경우 100호 기준 300만원으로 시작하는 게 통상적이라고 20년 이상 경력을 가진 복수의 화랑주들이 입을 모은다. 지난 2006~2007년 한국 미술 시장의 유례없는 호황기 때 30대를 전후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수천만원대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때 가격의 반값에 내놔도 되팔기 어렵다. 10년 새 수요 트렌드가 바뀌기도 했지만 ‘거품’이 끼기도 했다.
작품값이 통용되려면 비슷한 수준에서 반복적·지속적으로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 화랑은 특정작가의 전시를 기획해 출품작의 일정량을 같은 가격대로 판매했을 경우 ‘시장가격’으로 판단하고 다음 거래를 위해 가격을 조금 올린다. 가격을 올려서도 거래가 꾸준하면 또 올리는 식으로 가격을 조정하는데 신진작가가 화랑 작품가를 두 배로 올리는 데 6~7년 걸리는 게 보통이다. A 작가는 이런 식으로 30년에 걸쳐 3,000만원대의 화랑가(價)를 형성한 것이다. 경매에서 한두 번 비정상적인 고가에 낙찰된 적이 있더라도 반복적·지속적 거래가 일어나지 않으면 시장가격으로 보지 않는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B씨가 종로구 인사동의 갤러리를 대관해 첫 개인전을 열었고 출품작 중 가장 비싼 작품을 B씨의 할아버지가 700만원에 구입한 것이나, 국회의원 남편을 둔 C화가의 전시가 문전성시를 이뤄 작품들이 수백만 원에 팔렸다고 해서 이들이 ‘시장성 있는 작가’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미술 시장이 이처럼 특수한데다 국내 시장은 유난히 협소하다. 국내 최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 측 관계자는 “연 10회 이상 반복적으로 경매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국내 작가는 작고 작가를 포함해도 10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공급자 못지않게 수요자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연회비를 내는 서울옥션의 고객은 5만명, 케이옥션은 3만명에 이르지만 이 중 연간 10점 이상의 작품을 구입하거나 ‘억대 그림’을 사 모으는 수집가는 1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가나·국제·현대·아라리오갤러리 등 국내 주요 화랑의 디렉터 10명을 설문해 어림잡은 국내 미술 컬렉터 수치도 500명 미만이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매년 발표하는 ‘미술 시장 실태조사’의 전국 화랑 수 460곳(2018년 기준)과 맞먹는다. 이 중 약 23%인 104곳이 일 년 동안 작품을 단 한 점도 판매하지 못했고 절반 이상인 184곳(52%)의 연간 작품 판매금액은 5,000만원 미만으로 보고됐다. 2018년 말 한국계 갤러리스트가 해외화랑인 리만머핀갤러리에서 레비고비갤러리로 이직하면서 ‘고객정보’를 빼돌렸다며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을 정도로 미술 시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구매층이 얇은 편이다.
미술품 유통은 크게 경매회사, 화랑, 개인 딜러(중개인)에 의해 이뤄진다. 작품에 대한 등기·등록의 의무가 없어 개인 간 거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작품 정보 등록을 위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K아트마켓(미술시장정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등록된 사례가 14만건에 불과하다. 이조차도 모두 경매 거래 내용이다.
6차례 유예 끝 ‘반쪽짜리 양도세’ 부과…그마저 화랑街 반발에 후퇴
■미술품 양도세 과세 어떻게
입법 나선지 23년만인 2013년
‘기타소득’ 제한적 형태로 부과
작년말 컬렉터 과세 강화 소식에
미술계 탄원서 제출 등 강력 반발
1억 이하는 비용공제율 90%로↑
소액 거래 인센티브 등 대안 마련
과세 정상화하되 충격은 줄여야
국내에서 미술품은 취득·등록세는 물론 보유세·관세 등 제반 세금이 붙지 않는다. 양도세 역시 경매회사·화랑은 법인세와 사업소득을 내지만 개인 컬렉터의 경우 ‘기타소득’이라는 제한적인 형태로 부과된다. 사업소득으로 종합과세하면 세율이 최대 46.2%에 이르지만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하면 필요경비율을 80%까지 인정(비용 공제)하기 때문에 지방세를 합해도 4.4%에 불과하다.
개인 컬렉터에 대한 미술품 양도세 부과는 미술업계의 반대와 숱한 논란 끝에 지난 2013년 1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1990년 서화·골동품에 대한 양도세 과세방안을 발표하고 입법에 나선 후 무려 23년 만이다. 그동안 법안폐기 1회, 시행연기 6회의 진통을 겪었다.
지난해 10월 미술업계가 정부의 개인 컬렉터에 대한 양도세 과세 강화 방침에 반발한 것은 기타소득으로만 과세하기로 했던 약속을 깼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승훈 화랑협회 총무이사(본 갤러리 대표)는 “국세청에서 유권해석으로 일부 개인 컬렉터들에 대해 사업소득으로 과세했다는 사례가 수집되고 있다”며 “조세 형평성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당장 양도세 과세기준을 바꾸기보다 거래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고 ‘사업행위’로 판단되는 경우 사업소득으로 과세할 수 있는지를 들여다본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현행 소득세법에는 어느 선까지 사업소득으로 볼 것인지에 관한 명시적인 조항이 없다. 다만 미술품 거래가 영리 목적이거나 계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사업소득으로 과세할 수 있다는 게 세무업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현행 양도세 규정은 사실상 반쪽짜리다. 작고한 작가의 6,000만원 이상의 작품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 미술품 시장의 규모도 크지 않고 과세 대상 작가와 작품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기타소득을 사업소득으로 바꾼다고 해서 당장 정부가 확보할 수 있는 세수 효과가 크지는 않다. 국세청이 지난 5년간(2013~2017년 과세 연도) 거둬들인 양도세는 148억원에 불과하다. 직접 양도세를 낸 개인이 5년 동안 118명(176건)에 그쳤다는 것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방증이다. 미술품 거래를 자발적으로 신고하도록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한 과세 강화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미술업계는 왜 이렇게 미술품 양도세 과세에 반대하는 것일까. 단순히 세금 문제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자칫 미술품의 불투명한 감정과 유통과정 개선 등 전반적인 시장 압박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세무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시장이 영세한 상황에서는 세금 이야기를 하는 순간 다 숨어버린다”며 “유통과정 개선과 자금출처 조사에 대한 우려가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에도 미술업계의 반발은 거셌다. 국세청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한편 정치권을 움직여 지난해 11월 말 개인 컬렉터의 양도세는 기타소득으로만 과세한다는 내용의 소득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과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득세법 제21조 25항의 ‘양도’를 ‘양도(자기의 계산과 책임하에 계속적·반복적으로 양도하는 경우를 포함하되 사업장을 갖추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한다)’라고 수정했다.
정부도 또 한발 물러섰다. 5일 양도세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양도가액 1억원 이하 서화 및 골동품은 필요경비율을 90% 적용한다. 필요경비율이 기존보다 10%포인트 높아진 만큼 세율도 4.4%에서 2.2%로 낮아진다. 양도가액이 1억원을 초과할 때는 기존처럼 80%의 필요경비율을 적용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술품 유통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양도세 부담을 줄여달라는 의견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시행령 개정안은 오는 28일까지 입법예고를 마치고 국무회의 등을 거쳐 2월1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미술품 양도세 과세를 정상화하되 시장 충격은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의 자발적인 신고·등록을 유도하고 소액 미술품 거래를 늘리기 위한 인센티브 마련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우선 미술품을 거래하는 화랑·경매회사 등 유통업자들이 법에서 정한 기준을 초과해 수입을 신고할 경우 초과분에 대한 공제 등의 혜택을 부여하는 조세특례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이다. 음성적인 개인 컬렉터의 자발적인 납세를 유도하기 위해 양도세 과세 최저한도를 현재 6,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와 함께 영국·프랑스·일본 등에서 시행 중인 상속세 물납을 허용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술품 온라인 경매 플랫폼 포털아트의 이창우 대표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인데도 아직 국내 미술 시장은 (거래 관행이) 30년 전 그대로”라며 “(제도 개선과 업계의 인식 전환을 통해) 미술품 거래가 지금보다 더 투명해지면 자연스럽게 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곤·조상인기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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