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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에너지의 '삼세번' 도전…기후변화로 대세 될까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22>태양 에너지

20세기초 美 슈먼 '태양열 포집' 활용

나일강 발전소 건설로 상용화 나섰지만

1차대전 이후 석유가 新에너지원 주목

1950년대 태양광 전기변환 장치 등장

'오일쇼크' 맞아 또한번 미래동력 기대

거대 석유사들까지 연구개발에 앞장

韓도 '태양의 집' 등 관련 기술 발굴

석탄·석유 등 당대 주류 에너지원 따라

태양광 기술 부침…현재까지 이어져

한국수자원공사가 충북 충주다목적댐(청풍호) 수면 위에 설치한 ‘청풍호 수상태양광 발전소’ 모습. /사진제공=한국수자원공사




지난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의 동년배들은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컬러과학학습만화’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1976년에 처음 출간된 이 시리즈는 총 16권으로 이뤄져 있다. 1권 ‘지구의 과학’에서부터 16권 ‘발명과 발견’까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과학과 기술의 원리를 설명하는 구성이다. 금성사 과학만화는 ‘과학입국’을 강조하던 당시 시대 분위기를 반영했다. 과학을 진흥하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이 과학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한 질을 집에 들이셨다. 나는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된 후부터 이 책들을 반복해서 읽었다.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많았지만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만화책을 보는 재미가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리즈 중 12권은 ‘빛/소리/열’에 대한 것이었다.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으면 종이를 태울 수 있다는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마침 외할머니댁에 커다란 돋보기가 있었다. 화창한 여름날 나는 돋보기를 들고 아파트 앞마당으로 나갔다. 태양 방향으로 돋보기를 대자 태양 빛이 초점을 이루며 새하얗게 모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같이 들고 나간 신문지를 대봤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실망한 채 이리저리 초점을 이동시키던 중 우연히 굵은 글씨로 헤드라인이 인쇄된 부위에 머물렀다. 그러자 곧 신문지에서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동그랗게 구멍이 뚫렸다! 검은 잉크가 인쇄된 부분은 햇빛을 많이 흡수해 흰 부분에 비해 잘 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틈만 나면 할머니 돋보기를 주머니에 몰래 넣고 밖으로 뛰쳐나가고는 했다.

태양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사실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인류는 아주 먼 옛날부터 태양에너지를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을 직간접적으로 이용해 편의를 추구했다. 햇볕에 음식물을 말려 수분을 제거하면 훨씬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태양에너지를 이용하게 된 것은 유리를 정밀하게 깎아 렌즈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태양 광선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게 되자 생각지도 못했던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태양광의 위력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프랑스의 물리학자 오귀스탱 장 프레넬(1788~1827)이었다. 그는 유리 표면에 정밀한 동심원 무늬의 홈을 새겨넣어 집광(集光) 능력을 극대화했다. 이렇게 모인 태양광은 섭씨 1,600도 이상까지 온도가 올라 암석을 녹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프레넬 렌즈는 어린 시절 할머니 돋보기로 했던 불장난의 최고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태양에너지를 광범위하게 상용화하려는 노력이 본격화한 것은 20세기 초가 돼서였다. 이번에는 프랭크 슈먼(1862~1918)이라는 미국인 발명가에 의해서였다. 그는 1897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양열 포집장치를 발명했다. 슈먼은 이 장치 여러 개를 병렬적으로 연결해 보일러의 물을 끓인 후 그 증기를 이용해 증기기관을 가동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12년에 영국과 독일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아 당시 영국령이었던 이집트 나일강변에 대규모 태양열 발전소를 설치했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동력은 나일강 관개설비를 돌릴 수 있을 정도였다. 슈먼은 이와 유사한 태양열 발전소를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건설해 전 세계 산업동력을 공급한다는 구상까지 세웠다. 하지만 그의 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석탄공급이 원활해지고 이용·운반·보관이 용이한 석유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꺾이고 말았다. 태양에너지는 이후 한동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사라졌던 태양에너지가 다시 대중에게 모습을 나타낸 것은 2차 대전이 끝난 후의 일이었다. 이번에는 태양열이 아니라 태양광을 직접 전기로 변환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였다. 반도체 물질의 광기전(photovoltaic·PV) 효과를 이용해 빛을 전류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1830년대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를 처음으로 실용적인 장치로 만들어낸 것은 벨연구소(1954년)였다. 태양광, 혹은 PV 기술의 등장은 1950년대 이후 반도체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은 것이었다. 초기 태양광 기술은 효율이 4~5%에 불과했지만 전력공급이 어려운 인공위성 등 우주 기술에 응용되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오일쇼크’를 맞아 석유 가격이 급등하자 태양에너지가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떠오르게 됐다. 1976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지미 카터는 태양에너지 관련 연구개발에 3조달러를 투자하는 한편 백악관 지붕에 PV 패널과 태양열 급탕기를 설치하는 등 재생에너지 활용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건물 외벽에 태양광 패널을 두른 서울 노원 에너지제로주택 전경. /사진제공=최형섭 교수




한국에 태양에너지 관련 테크놀로지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 역시 오일쇼크의 영향이었다. 석유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에서 그 영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원자력연구소 연구원들은 오일쇼크 직후부터 태양열 난방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해 1974년 1월 서울시 상도동에 ‘태양의 집’을 지었다. 태양에너지를 집열장치에 모아 파이프 안의 물을 데운 후 그것을 집 전체에 순환시키는 방식이었다. 연구책임자는 32평 크기의 주택에서 하루 20만㎉의 열을 얻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는 벙커C유 19ℓ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한국의 모든 주택이 이렇게 만들어진다면 엄청난 양의 석유를 아낄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정부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부설 독립기관으로 태양에너지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재생에너지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기술 트렌드를 충실히 추격하는 양상이었다.

1960~1970년대 태양에너지 개발에서 흥미로운 점은 거대 석유 회사들이 연구개발에 앞장섰다는 점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업이 스스로의 존재를 무력화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 개발에 투자한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오일쇼크 이후 미국에서 ‘석유 산업’이라는 영역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다변화 전략의 일환으로 태양광 기술을 비롯한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태양광 관련 특허를 확보함으로써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확산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거대 석유 회사의 지원과 더불어 정부와 대학의 연구활동으로 태양광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효율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생산단가 역시 떨어졌다.

하지만 1981년 이후 석유 가격이 안정되면서 태양에너지의 두 번째 기회의 창이 닫히고 말았다. 그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은 카터가 마련한 태양에너지 관련 정책을 모조리 취소했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석유 가격이 다시 급등하기 전까지 태양광 기술은 다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결국 태양에너지 관련 기술의 운명은 그 자체의 장단점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석탄이나 석유·원자력 등 당대 주류 에너지원의 가격(또는 입수 가능성) 변화에 따라 결정됐다. 그 와중에 현재 사용 가능한 PV 패널의 효율은 초창기인 1950년대에 비해 많게는 7~8배까지 높아졌다.

2020년 현재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위기에 대한 우려 속에 다시금 태양에너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실상 무궁무진한 태양에너지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역사는 에너지 전환의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최형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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