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9월 대형 원자력 발전소 건설 위주에서 운영·정비·해체를 포함한 전(全)주기로 넓혀 ‘원전 수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발표한 이후 뚜렷한 이행방안을 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사와 민간 원전 기업, 수출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원전수출전략협의회는 지난 9월 원전 전주기 수출 활성화 정책 발표를 위해 회의를 개최한 이후 후속 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산업부는 당시 ‘원전수출전략협의회는 수출지원 방안의 최종 협의체로 수주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정책만 발표해 놓고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것이다.
대신 산업부는 지난 7일 국책 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을 통해 ‘원전수출 활성화를 위한 지원제도 개선 방안 연구’라는 제목으로 긴급 연구용역 입찰공고를 냈다. 해당 용역은 △국내 원전기술 수출 관련 지원정책에 대한 현황 △해외 기업의 수출지원 정책에 대한 사례 분석 △글로벌 원전기업과 한국 수출금융 사례 비교 △효과적인 원전 수출 지원정책을 위한 제언 등 사실상 지난 9월 발표된 정책의 기초가 됐어야 했을 법한 내용이 연구 과제로 적시돼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이런 용역은 미리 완료를 해놨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전수출전략협의회는 시급한 현안이 있을 때 비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게 돼 있다”며 “연구용역 역시 각계의 피드백을 받아보자는 차원이다. 이제 원전 수출 시스템을 정비해나가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상황인식이 안이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원전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이후 현재까지 이렇다 할 수출 실적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원전 중소기업은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국내 원전 업계에서 중소·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0%가 넘지만, 독자 수출 경험을 가진 중소기업은 5%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전 중기 대표는 “(신규 원전 건설 중단으로) 국내 일감이 끊겨가는 현실에서 수출 길마저 찾지 못하면 답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진작 예견됐다고 지적한다. 우선 원전 수출 정책 범위를 크게 키워놓고 산업부 1개 부처에게만 맡겨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국가 간 원전 수출 협상은 수주 협상, 금융 지원 등은 물론 경제와 외교 협력, 인력 양성, 인허가 지원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진다”며 “범부처 지원단을 꾸리고 특별법을 제정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원전 축소를 표방하는 탈원전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탈원전으로 한국 자체의 원전 건설이 축소되는데 어느 국가가 국내 업체와 수출 계약을 늘리겠나”하고 꼬집었다.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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