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002320)그룹의 물류 자회사인 ㈜한진이 핵심 사업인 택배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시설투자를 진행한다. 대전에 전국망 택배 허브를 조성,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취임 이후 유휴지분 매각을 통한 전략적투자자(SI) 유치 및 시설투자 강화 등 본격적인 색깔 바꾸기에 나선 모습이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진은 지난 21일 이사회를 열고 대전 택배 메가 허브 터미널 구축 계획안을 통과시켰다. ㈜한진은 3년간 2,850억원을 투자해 1만8,402평 부지에 지상 3층, 연면적 총 3만8,743평 규모의 건물을 짓는다. 올해 1월 인허가와 설계를 거쳐 오는 2023년 4월 본격적으로 가동할 예정이다. 이번 투자는 지난해 초 한진이 밝힌 투자 계획의 하나다. 한진은 5년간 택배 터미널 신축·확장·설비 자동화 등에 3,8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바 있다.
㈜한진은 택배 업계 점유율 12%대로 2위권 업체다. 3위인 롯데택배와 엇비슷한 점유율로 순위 싸움 중이다. 1위 CJ대한통운(45%)과는 큰 격차를 보인다.
택배 사업은 ㈜한진의 핵심 사업이다. 3·4분기 기준 전체 매출의 39.3%가 택배에서 나왔다. 인천터미널 등의 하역(16.6%) 매출의 2배다. 온라인 쇼핑몰 등 최근 택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매출 구성도 달라졌다. 하지만 그동안 대규모 투자는 잘 없었다. 2015년 서울 동남권 물류단지를 열고 2017년 3월 대전중부화물복합터미널㈜을 인수, 대전 허브 터미널의 물류처리 능력을 확장한 정도였다.
㈜한진은 이번 투자를 통해 중장기 택배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택배 사업의 생산성을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전 허브는 현재 일 처리 물량 70만건 수준인데 150만건 이상의 메가 허브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주요 주주들이 한창 샅바 싸움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이번 투자 발표로 조 회장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 회장 부임 이후 계열사에서 진행된 사실상 첫 대규모 투자이기 때문이다.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003490) 부사장이 그룹 경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1월 KCGI가 주장한 내용을 이행했다는 점도 포인트다. KCGI는 ‘밸류 한진, 국민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한진’이라는 주주제언 자료를 통해 ㈜한진이 보유한 유휴부지 및 유휴지분 매각, 택배시설에 대한 투자를 요구한 바 있다. ㈜한진은 10월 GS홈쇼핑에 고(故) 조양호 회장 보유지분 6.87%를 250억원에 매각했다. 이를 통해 GS홈쇼핑은 ㈜한진의 4대 주주로 올라섰다. ㈜한진의 지분율은 한진칼(180640)(23.62%), KCGI(10.17%), 국민연금(9.62%), GS홈쇼핑 순이다. GS홈쇼핑은 물류 및 택배 사업과 관련해 ㈜한진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한진은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이 보유한 자회사 중 지분율이 가장 낮은(22.2%)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들의 마음을 잡기에 나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이 3월 한진칼 이사회를 앞두고 그룹 경영 전반에서 실적을 내고 있는 모습을 통해 주주 마음 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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