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허가를 위한 마지막 관문인 임상3상 시험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음에도 ‘절반의 성공’으로 포장 하는 바이오벤처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임상 결과가 당초 목적한 것이 아닌 다른 지표를 충족했다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자신하는 등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바이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태가 급격한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결국 사실이 드러나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고 우려한다.
22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임상3상을 수행 중인 바이오벤처 사이에서 결과가 좋지 않은 주 평가지표 대신 보조 평가지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임상시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임상시험에서 주 평가지표는 회사가 신약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FDA에 신청할 때 후보물질의 효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뜻한다. 이 지표는 FDA와 회사 사이에서 합의된 일종의 ‘룰’이며 당연히 이 지표를 충족해야 FDA에서 신약허가가 나온다. 1차 지표에서 기준치에 미달했지만 보조지표 충족을 이유로 허가를 받은 사례는 극히 일부분이다.
한올바이오파마와 대웅제약은 지난 21일 미국에서 진행한 임상3상이 주 평가지표인 하부각막염색지수(ICSS)에서 무의미한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다만 2차 지표인 상·중·하부 전체를 보는 총각막염색지수(TCSS)와 중앙부 손상 개선 효과를 측정하는 중앙각막염색지수(CCSS)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박승국 한올바이오파마 대표는 “CCSS와 TCSS가 임상적·상업적으로 더 의미 있는 지표”라며 “절반의 성공”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한올바이오파마와 대웅제약은 16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지표 모두에서 우수한 효과를 확인해 기쁘다고 밝혔다. 불과 닷새 만에 말을 바꾼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헬릭스미스는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의 임상3상 발표 당시 “시료 간 혼용으로 임상 데이터에 오염이 발생했다”고 밝혔으나 최근 나한익 헬릭스미스 전무가 헬릭스미스 주주들이 모인 온라인카페에 “약물 혼용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인다”고 밝혀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메지온 역시 지난해 심장 희귀질환 치료제 유데나필 임상3상 발표에서 주 평가지표인 ‘최대산소소비량’ 달성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조 평가지표인 유산소운동에서 무산소운동으로 바뀌는 시점에서의 산소소비량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와 결과적으로 임상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보조 평가지표인 유산소운동에서 무산소운동으로 바뀌는 시점의 산소소비량이 더욱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 것은 덤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포장’에 대해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차라리 솔직하게 실패를 실패라고 밝히고 임상시험 중단을 선언한 신라젠이 양심적으로 보일 정도”라며 “당장의 주가 하락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이 같은 일이 반복될수록 투자자들의 신뢰는 더더욱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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