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인 ‘우한 폐렴’에 대한 사실상의 전쟁을 선포했다. 우한 폐렴을 차상급 전염병으로 지정한 뒤 대응조치를 최상급으로 높이기로 하면서 총력체제에 나선 것이다. 다만 초기 대응에 실패해 환자들이 중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 상황에서 당분간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우한 폐렴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해당하는 ‘을류’ 전염병으로 지정하는 대신 대응책은 흑사병이나 콜레라와 같은 ‘갑류’ 전염병 수준으로 상향하기로 했다”면서 “(중국 내) 우한 폐렴 확진자가 440명, 사망자는 9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이후 인민일보는 확진자가 오후 7시 30분(현지시간) 현재 473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전날 오후 11시의 318명 확진, 6명 사망에서 급증한 수치다.
갑류 전염병 수준으로 대응할 경우 정부가 모든 단계에서 격리치료와 보고를 요구할 수 있으며 환자가 치료를 거부할 경우 경찰이 강제할 수 있고 공공장소에서 검문도 가능하다고 중국 매체들은 설명했다. 을류 전염병 지정에 대응은 ‘갑류’로 하는 방식은 지난 2002~2003년 전 세계적으로 773명의 사망자를 낸 사스 사태 당시 중국 정부가 채택했던 극약처방인 셈이다. 리빈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부주임은 “우한 폐렴이 변이를 일으키며 더욱 확산할 위험이 있다”며 “이미 사람 간 전파와 의료진 감염 현상이 나타났고 일정 범위에서 지역사회 전파가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저우즈쥔 베이징대 공중보건학 교수는 “갑류 수준의 대응은 중국 본토에서 가장 강력한 조치”라며 “우한 폐렴의 감염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지만 인체에 대한 위험성은 흑사병이나 콜레라보다 훨씬 덜 심각하다”고 전했다.
다만 중국 정부가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을 초기에 판단하지 못해 방역체계가 뚫린 상황에서 이미 확진환자가 중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통제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은 커지고 있다. 이미 중국 최대 연휴인 춘제(설)를 앞두고 수백만명이 우한을 거쳐 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본토 중심부에 소재한 우한은 교통의 요지로 육로와 항공편을 통해 각 지방으로 이동할 때 거쳐 가는 중추 경유지다.
춘제를 맞아 이동하는 중국인들의 공포심도 확진자 수 급증으로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우한 폐렴 환자가 처음 발생한 시기는 지난해 12월12일로 추정되는데 우한 보건당국은 한달여가 지난 이달 14일이 돼서야 우한시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 체온계 등 검역장비를 설치했다. 중국 당국의 한 보건 관계자는 “전염병은 초기 대응이 중요한데 중국 정부가 심각성에 대해 주저하는 상황에서 우한 폐렴이 급속도로 퍼진 듯하다”고 말했다. 관건은 춘제 연휴를 앞두고 이번주 방역 및 통제의 긴급성이다. 제대로 대처하지 않을 경우 오는 2월부터 중국 전역에서 환자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외신들은 실제 상황이 중국 당국의 공식발표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대만에서는 이미 우한 폐렴 확진자가 나온 데 이어 마카오과 홍콩에서도 이날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우한 폐렴의 중화권 확산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홍콩대 전염병역학통제센터에서 우한 폐렴이 17일까지 이미 중국 내 20여개 도시로 확산했으며 우한 내 감염자 1,343명과 다른 도시 감염자 116명을 포함해 중국 내 감염자가 이미 1,459명에 이른다는 추정치를 내놓았다”고 전했다. 앞서 17일 영국의 한 연구기관은 감염자가 이미 1,723명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게다가 중국 내에서마저 우한 폐렴이 사스처럼 박쥐에서 발원했으며 전염성이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스 대유행 당시 세계보건기구(WHO) 아시아 지역 대변인을 지낸 피터 코딩리는 “중국 정부는 우한 폐렴 확산에 대해 초기부터 거짓말을 했다”며 “사스 때 보였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 지금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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