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4분기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시황이 악화하며 국내 정유사가 저조한 실적을 내놓을 가능성이 커졌다. 2018년 4·4분기 총 영업손실 1조원을 기록한 이래 최악의 성적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096770)과 에쓰오일은 이달 말, GS(078930)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다음달 초 4·4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업계에서는 정유 4사의 ‘어닝쇼크’를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정유 사업이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내놓는다.
이는 정유사 수익의 핵심 지표인 정제마진이 지난해 4·4분기 급락한 데 따른 것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의 비용을 뺀 수치다. 국내 정유업계에서는 통상 정제마진 4~5달러를 손익분기점(BEP)으로 본다.
문제는 최근 정제마진이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까지 배럴당 7.7달러를 기록했던 정제마진은 10월 4.1달러, 11월 0.7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12월에는 -0.1달러로 급락했다. 주간 단위로는 11월 셋째 주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올해 들어서도 1달러를 밑돌고 있다.
정제마진이 단기간 내 개선될 여지가 크지 않다는 것은 정유업계를 더욱 암울하게 하는 요인이다. 중국 산둥성 일대의 소규모 정유사들이 수년간 공급 과잉을 주도하고 있는 데다가 미·중 무역합의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며 중국발 수요 증가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기대를 모았던 ‘국제해사기구(IMO) 2020’ 규제의 수혜 효과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IMO 2020은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 상한선을 기존 3.5%에서 0.5%로 강화하는 규제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사들은 저유황유 수요 급증에 대비해 왔으나 제품값 상승 효과가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2~1월 사이 IMO 등에 따른 경유 마진 개선을 기대했으나 현실화하지 않았다”며 “중국과 인도의 성장률 둔화, 저조한 난방유 수요로 등·경유 마진은 오히려 축소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황 함량 0.001% 국제경유 가격은 배럴당 83달러에서 최근 76달러까지 하락했다.
다만 올해 안에 정유사 실적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정제설비 신증설은 하루 89만배럴로 원유 수요 증가보다 작을 것”이라면서 “중국 석유제품 품질 강화 정책으로 노화된 설비의 감소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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