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를 수없이 했는데 막상 육두문자가 날아오니 당황스럽더군요.”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에서 만난 신임 경찰 강기호(28) 순경은 첫 야간근무 실습이 익숙지 않은 듯 이렇게 말했다.
강 순경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7월 300번째 경찰공무원 공채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1,675명의 신임 순경들은 같은 해 9월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했다. 이들은 올해 1월 각자 배정받은 관할 서 교육을 마치고 같은 달 말부터 일선 지구대에 투입돼 현재는 현장실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구대 실습 단계는 일선 현장에 투입돼 선배 경찰들과 함께 민원이나 신고를 처리하며 실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에 대한 대처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신임 경찰 교육의 여러 과정 중에서도 손꼽히는 중요한 커리큘럼이기도 하다.
서울경제신문은 이날 홍익지구대 야간근무에 투입된 강 순경, 전날인 30일 서울 서초경찰서 반포지구대 주간근무에 나선 장지훈(25) 순경과 동행해 이들이 ‘진짜 경찰관’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취재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전문성과 인권수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후 처음 선발된 경찰인 만큼 이들에게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현장실습에 나선 강 순경의 경찰조끼 오른쪽 하단 주머니를 오가는 손은 이날 유달리 분주했다. 실습현장에서 배운 것들이 생길 때마다 메모할 수첩이 이곳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순찰에 나가기 전 주의사항을 들을 때나 순찰차 안팎에서 강 순경은 배우는 모든 것들을 수첩에 빽빽이 기록했다.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는 서울 내 지구대 중에서도 가장 바쁜 곳으로 꼽힌다. 해마다 3만여건의 신고접수를 처리하는데 이는 서울 내 일개 경찰서 단위가 1년 동안 처리하는 양에 맞먹는 수준이다. 이날 강 순경과 함께 순찰차에 오른 이원형 경장은 “홍익지구대는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게 하는 곳으로 악명 높다”며 웃음을 지었다. 강 순경은 홍익지구대에 근무하고 싶어서 마포경찰서를 1순위 지망으로 지원했다. 강 순경은 “일은 어렵겠지만 그만큼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며 “입대 직전에 놀러 왔던 곳인데 경찰이 돼 돌아오니 감회가 새롭다”고 심경을 밝혔다.
오후10시37분께 이윽고 강 순경이 탄 45번 순찰차에 첫 신고가 떨어졌다. 순간 안경을 낀 채 메모를 하던 강 순경은 수첩을 욱여넣고 신고 내용이 뜬 순찰차 내 작은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데이트폭력을 목격한 한 시민의 신고였다. 몇 분이 지나자 혐의자와 피해자가 같은 차를 탄 채 현장을 떠났다는 정보가 추가로 들어왔다. 이 경위는 현장상황의 가변성을 강조하며 이 같은 경우 어떻게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 순경에게 설명했다.
현장실습교육은 그간 활자로 배운 이론과 현실을 ‘동기화’해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실제 일선에서 맞닥뜨리는 현장은 이론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날 강 순경과 동행근무하며 교육을 맡은 홍익지구대 소속 정연학 경위는 “홍익지구대는 워낙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 오래 일한 직원조차 어려워한다”며 “직접 경험하고 체득하는 것이 왕도”라고 덧붙였다.
오후11시24분께 떨어진 세 번째 신고 역시 이론보다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취객이 택시기사를 폭행했다는 신고였다. 순찰차가 현장에 닿자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취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배 경찰들이 만취 상태로 사실상 대화가 불가능한 취객 설득하기를 십여 분, 결국 지구대로 임의동행하는 데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구대로 이동하는 몇 분 사이에 취기가 더욱 오른 취객은 지구대를 몇 발자국 앞에 두고 경찰들에게 욕을 하며 동행을 거부했다.
앞서 취객의 이름과 주소지는 확보했지만 전화번호는 얻지 못한 애매한 상황에서 선배 경찰들은 지속적으로 취객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임의동행까지 이끌어낸 상황에서 전화번호는 확보해야 추후 수사를 매끄럽게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경찰은 한사코 거부하는 취객을 귀가시킬 수밖에 없었다.
사건은 이보다 사실 쉽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출동현장에서 취객이 전화번호를 알려줬지만 그 순간 현장통제에 여념이 없던 강 순경이 이를 받아 적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 순경은 “당시 취객을 통제하는 데 정신을 빼앗긴데다 긴장한 터라 타이밍을 놓쳤다”며 “앞으로 이런 사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반포지구대 장 순경의 주간근무 역시 배움의 연속이었다. 오전6시30분께 출근한 장 순경은 전날 밤 관내에서 발생한 사건을 체크한 후 총기 수량 확인하는 법, 습득물 처리하는 법을 배웠다. 두 가지 모두 지구대 막내의 역할이자 교육이 진행되는 세 달간 장 순경이 해야 할 일이다. 새벽부터 근무해 피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장 순경은 “교육받을 생각에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긴장이 돼 전혀 피곤하지 않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오전에는 장 순경의 직속선배인 송우진 순경의 ‘이론 강의’가 이어졌다. 관내 지리와 행정업무 처리 방식, 민원 대응 방법 등을 배웠다. 반포지구대 관내에는 고속버스터미널과 경부선 호남선이 위치해 관내 지리를 숙지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송 순경은 “아직 실습 초기 단계라 복잡한 것보다는 지구대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알려주고 있다”며 “실습기간 내내 ‘기본’에 대한 교육은 반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순찰1팀장인 이정학 경위의 ‘순찰차 교육’이 1시간가량 진행됐다. 식곤증이 몰려올 시간대였지만 장 순경의 얼굴에서는 졸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교육은 운전석에 앉은 이 경위가 관내 전체를 돌며 각 구역의 특징을 설명하면 장 순경이 숙지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생소한 관내 골목 풍경에 장 순경은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곳은 신사동 먹자골목인데 주점에서 피 말리는 신고가 자주 들어온다”는 이 경위의 말에 장 순경은 상기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키기도 했다.
/허진·이희조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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