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경차 판매량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득 수준 증가에 따른 큰차 선호,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대체 시장의 성장, 저조한 수익성에 따른 제조사들의 신차 제작 기피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경형 SUV’를 생산·판매할 계획인 광주형일자리 사업의 미래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경차(배기량 1,000㏄ 미만) 판매량은 11만5,859대로 역대 가장 적었다. 지난 2012년만 해도 20만2,844대를 기록했던 경차 판매량이 약 7년 만에 반토막이 난 것이다. 올해는 10만대선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경차는 기아자동차의 ‘모닝’과 ‘레이’, 한국GM의 ‘스파크’다. 모닝 판매량은 2011년 11만7,029대로 최고점을 찍은 뒤 지난해 5만364대로 급전직하했고, 레이 역시 2012년 4만3,891대로 인기를 끈 후 지난해 2만7,831대로 급감했다. 스파크 역시 2012년 6만4760대에서 지난해 3만5,513대로 떨어졌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이 큰 차를 선호하고 제조사들도 수익성이 떨어져 공을 들이지 않는다”며 “(경차는)소비자와 제조사들이 모두 기피하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경차 외면 현상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2014년 586만대 수준이던 글로벌 경차 판매량은 2018년 532만대로 50만대 이상 줄었다. 동남아시아 등에서는 아직 경차 수요가 있지만 이 지역은 이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현지 전략 차종을 내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차가 자동차 시장의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정부·민간·노조가 참여해 비교적 낮은 임금으로 경형 SUV를 생산할 예정인 ‘광주형일자리’의 사업성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경형 SUV는 배기량 1,000㏄ 미만인 SUV다. 기존 완성차 업체가 만들지 않는 틈새 차종(경차 SUV)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경차 시장 자체가 외면당하면서 근본적인 사업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과 노사 협력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사업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며 “민관정이 자원만 쏟아붓고 성과를 거두지 못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광주형일자리는 사업성과 별개로 참여주체 간 입장 차이로 출범부터 삐걱대고 있다. 광주시(21%)에 이은 2대 주주인 현대차(19%)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현대차는 단순 투자자일 뿐”이며 “생산된 차량을 구매해 판매(위탁생산)할 뿐 공장 운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사업 불참을 선언한 한국노총은 “광주형일자리가 현대차의 일자리로 변질됐다”며 “사업 추진 과정에서 현대차의 이익만 대변해 노사 협력이라는 본래 취지가 훼손됐다”고 주장한다. 3대·4대 주주로 참여하는 광주은행(11.3%), 산업은행(10.9%)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 입김이 센 또 다른 국책은행에도 광주형일자리에 투자하라는 압력이 내려오고 있다”며 “사업 성공이 불투명한 사업에 금융권 자금이 쌈짓돈처럼 쓰인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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