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는 중국 내 다른 위험지역으로 입국제한 조치를 추가 검토하기로 한 것은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방역 대책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의료계를 중심으로 일찍이 중국에서 들어오는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만큼 ‘뒷북 조치’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9일 중국 광둥성을 다녀온 부부(26·27번 환자)로부터 감염된 확진자(25번)가 발생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 관련 확대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 등 국외 상황이 진정되지 않으면 유입 위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국외 발생 상황을 면밀히 주시해 추가 대책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날 검토하겠다고 밝힌 방역 조치 가운데 핵심은 중국 내 다른 위험지역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다. 지난 8일 기준으로 중국 내 신종 코로나 발병률은 후베이성에서 전체 72%, 그 외 지역에서 28%로 집계됐다. 광둥성·저장성·허난성·후난성·안후이성·장시성 등이 대표적인 중국 내 다른 위험지역으로 손꼽힌다.
다만 당장 입국제한 지역을 추가하지는 않았다. 입국제한 후 중국에서 입국자가 하루 평균 1만3,000명에서 5,400명으로 60% 줄어든 점을 들어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상황이 급변하기 전까지는 조금 더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며 “중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내·외국인들이 12일부터 애플리케이션으로 현재 몸 상태, 발열, 인후통 등 건강상태를 진단할 수 있도록 ‘자가진단 앱’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또 싱가포르·일본·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홍콩·마카오·대만 등의 입국자를 대상으로 한 검역도 강화될 예정이다. ‘슈퍼 전염지’의 우려가 제기된 크루즈 선박 입항에 대해서도 입항 금지, 승객 하선 금지 등의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검역 조치를 강화한 데는 중국의 춘제 휴가 연장조치가 이날 종료되고 지역사회 전파 규모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 총리는 “중국 내 (신종 코로나) 확산세가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며 “중국 춘제 연휴가 끝나면서 10일부터 대규모 이동이 시작될 것이고 국내 확진자의 감염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지역사회 전파도 우려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조치들로 신종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에는 늦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날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은 25번 환자는 후베이성 외 다른 성 방문자로부터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17·19번 확진자 역시 싱가포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한 뒤 확진 판정을 받았다. 16번 환자는 지난달 19일 태국 여행 후 입국해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정부가 4일부터 14일 이내 후베이성을 방문하거나 체류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모든 외국인에 대한 한국 입국을 전면 금지하고 중국에서 입국하는 모든 내외국인에 대해 주소와 연락처를 확인하고 있지만 이미 중국인 입국 금지를 선언한 다른 나라에 비해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상엽 고려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한국 정부가 외부 유입을 못 막고 있는데 국내 지역사회 내부 확산을 어떻게 막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빨리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제한, 여행금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우한 일대에 남은 한국 교민을 수송하기 위해 3차 전세기를 투입한다. 정부는 지난달 31일과 1일 우한 일대 거주하던 한국인 총 701명을 전세기로 귀국시켰다. 당시 중국 국적의 배우자와 자녀는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탑승이 불가능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우한에 체류 중인 한국 교민의 중국인 배우자도 한국행 전세기 탑승을 허용할 방침으로 선회하면서 3차 전세기에 중국 국적 배우자와 자녀 탑승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지에 한국인과 가족 230여명이 남아 있는 가운데 100여명이 탑승할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신종 코로나와 관련해 현 위기경보 수준인 ‘경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확진자가 현재까지 모두 정부의 방역망 내에서 관리되고 있는 점, 신종 코로나의 치명률이 낮은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그 외에 대규모 행사, 축제, 각종 시험 등도 축소나 연기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민간의료기관으로 진단 검사기관이 확대되면서 진단 수요가 증가하고 의사와 병원이 이를 기피하는 등의 혼란에 대해서도 대책 마련이 이뤄질 계획이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하루 진단검사 물량을 이달 말까지 1만건으로 늘리기로 했다.
14일 이상 자가격리자를 대상으로 4인 가구 기준 월 123만원의 지원비도 지급된다. 가구당 생활지원비 금액은 1인 가구의 경우 45만4,900원, 2인 가구 77만4,700원, 3인가구 102만2,400원이다. 가구 구성원 수가 5인 이상인 경우 5인 가구 금액으로 적용된다. 14일 미만인 경우 일할 계산해 지급한다.
/김지영·우영탁기자 ji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