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002320)그룹이 송현동 부지와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왕산 마리나 리조트 등 유휴자산을 연내 실제로 매각할 수 있을까. 투자 업계에서는 3개의 큰 산을 넘어야 해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과 KCGI, 반도건설로 구성된 반(反) 조원태 회장 세력 ‘한진그룹 정상화를 위한 주주연합’에 맞선 견제구 정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송현동 부지와 왕산 마리나 등 매각 발표 이후 아직 주관사 선정 등 관련 작업은 진척이 없다. 6일과 7일 매각 발표 후 아직 3~4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난해 이미 매각 작업을 했던 만큼 사측이 의지가 있다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한진칼(180640)이나 대한항공(003490) 등에 감사인이 바뀌면서 지난해 기회를 얻지 못한 회계법인에는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렸다. 하지만 업계의 분위기는 썰렁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회사 측이나 투자 업계도 아직 전혀 움직임이 없다”고 설명했다. 왜일까.
①조원태 vs 반(反) 조원태, 주총 결과 봐야=가장 큰 이유로 3월 주주총회를 들고 있다. 현재 조원태 회장 측 지분율(33.4%)과 반 조원태 측(32%)의 지분율은 엇비슷하다. 소액 주주의 결정에 따라 주총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조원태 회장 측과 반 조원태 회장 측 양쪽 모두 유휴자산 매각이 필요하단 점은 의결이 일치한다. 변수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다. 한진그룹의 이번 유휴자산 매각은 주요 주주인 KCGI의 제안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현 경영진에 반기를 든 조현아 전 부사장이 맡았던 호텔 관련 자산들을 팔아 버리는 2가지 의도를 담고 있다. 이렇다 보니 만약 반 조원태 회장 측이 주총에서 승리하고 이사회를 장악하면 호텔 관련 자산 매각 작업이 연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물론 조 전 부사장이 반 조원태 연합에 참여하면서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애착을 가졌던 사업인 만큼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송현동 부지 등 상징성 있는 유휴자산은 매각하더라도 나머지 호텔 관련 자산은 수익성 개선 작업에 나설 수 있다.
②만년 적자 자산 누가 살까=한진그룹이 매각하겠다고 밝힌 자산 대부분은 △개발 규제가 적용되거나△만년 적자가 이어지고△상당한 시설 투자가 필요한 자산들이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가 대표적이다. 경복궁 옆 한옥 호텔을 조성해 한진그룹의 위상을 높이겠다며 2008년 삼성생명으로부터 3만6,642㎡ 규모 땅을 2,900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인근에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 등 3개 학교가 인접, 학교 반경 200m 이내에 관광호텔을 세울 수 없다는 관련법에 발목 잡혔다. 법 개정 등이 추진됐지만,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으로 무산됐다. 2015년 대한항공은 호텔을 제외한 복합문화센터 개발을 진행하려 했지만 국정농단 사태와 연루된 광고감독 차은택씨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또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매각 추진 당시 송현동 부지는 부동산 시행·개발사들이 사들여 최고급 주택단지로 조성하려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고가 부동산 개발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사업 추진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 있다. 또 종로구에 유력 정치인들이 출마, 공약으로 공원화를 약속할 경우 매각은 미궁 속으로 빠질 수 있다.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부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겨울 별장으로 사용됐던 호텔을 한진그룹이 2008년 520억원에 인수해 운영했다. 1990년 개장했는데 특1급 호텔이면서 객실이 56실밖에 되지 않아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로 적자가 이어졌다. 왕산레저개발은 왕산마리나 조성사업을 위해 2011년 대한항공이 자본금 60억원을 출자해 설립됐다. 사업비 1,500억원을 들여 인천 영종지구 일대 9만8,604㎡ 공유수면을 매립, 해상 266척, 육상 34척 등 총 300척의 요트를 계류할 수 있는 항만시설이다. 다만 매년 적자를 내고 있어 대한항공이 유상증자를 통해 이를 메우고 있다.
투자 업계에서는 호텔업을 하는 한앤컴퍼니 등 주요 사모펀드가 매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수익성이 개선되기 힘든 구조의 자산을 PE가 인수할 가능성은 낮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보유한 부동산 자산을 유동화하는 추세다.
③신종코로나 바이러스도 돌발변수로=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항공업뿐 아니라 여행·호텔업이 된서리를 맞은 것도 악재다. 가뜩이나 적자가 나고 있는데 올해 실적을 근거로 매수자는 가격을 더 낮추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진칼과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아무리 적자 자산이고 수익을 못 내고 있다고 해도 헐값에 팔 수는 없다.
실제로 호텔 업계는 최근 주요 호텔 딜이 중단된 상황으로 전해졌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향후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예상하기 힘들어서다. 연내 매각을 위해서는 실사나 주관사 선정 등 3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딜 종료까지 6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상반기에 신종 코로나 사태가 안정된다 해도 언제 매각 작업을 본격화 할지 의문이다.
한 회계 업계 관계자는 “이번 매각 발표는 실제 매각보다 조현아 전 부사장과 KCGI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향후 다양한 변수들이 제어되고 실제로 매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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