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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탈원전으로 회색성장… 녹색모범국이 온실가스 '악동'돼 안타깝다"

<유영숙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국가 차원서 키운 녹색성장, 정권 바뀌자 다 지워져

화석연료 사용 다시 늘어나며 탄소배출량 세계7위

中 원전 늘리는데 우리만 탈원전하면 문제 해결되나

4대강도 기후변화 대응 차원…훗날 역사가 평가할것

미세먼지 뒷골목 불량배라면 기후변화는 핵폭탄급

유영숙 신임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이 최근 KIST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는 핵폭탄급”이라며 경각심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KIST






“지구온난화라는 표현이 너무 약하다 싶을 정도로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탈원전으로 오히려 화력발전이 늘어나 온실가스 배출이 더 증가하며 글로벌커뮤니티에서 한국을 ‘악동’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여전히 화석연료를 많이 쓰면서 세계 7위 온실가스 배출국에 올라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유영숙(65) 신임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의 일갈이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부원장을 거쳐 지난 2011년 5월부터 1년10개월 동안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당시는 이명박(MB) 정부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정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때였다. 유 이사장은 최근 KIST 연구실에서 3시간가량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 내내 “녹색성장을 해야지 회색성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MB정부는 녹색성장과 4대강 사업을 내걸었는데 언뜻 보면 모순 아닌가.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때 4대강을 했고 이후 저는 수질관리와 수변지역 생태계 정리·보존을 했다. MB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국가 비전은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 위기에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4대강 사업도 그것 때문에 했다. 물그릇을 키워놓은 덕분에 그 뒤 몇년간 심한 가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댐을 채워놓으니 주변 지하수의 수위가 올라가 농업용수·공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비판적인 목소리만 많이 나오는데 역사가 두고 판단할 것이다.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이 다음 정권으로 이어지지 못했는데.

△당시 개발도상국의 녹색성장에 도움을 주는 유엔 산하 ‘녹색기후기금(GCF)’도 MB가 적극 나서 독일과 경쟁한 끝에 송도에 힘겹게 유치했다.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와 녹색기술센터(GTC)까지 그린 삼각형을 만들어 성장동력을 얻으려 했다. 2020년까지 탄소를 30% 줄이겠다는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을 내놓자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10년부터 저탄소 녹색성장을 채택하고 실행보고서를 매년 내기 시작했다. 온실가스도 공장·자동차·건물·농업·일상생활 등에서 모두 줄이려는 노력을 했고 환경부는 폐기물과 일상생활을 맡았다. 대중교통을 타거나 전기·가스를 적게 쓰고 친환경 세제·비누 등을 사면 ‘그린카드’에서 포인트를 줬는데 지금도 많은 분이 쓰고 있다. 문제는 다음 정부가 녹색 지우기에 바빴다는 점이다. 국익을 위해 관심을 갖고 키웠다면 국제적인 룰을 정하거나 인재를 키우거나 여러 측면에서 실익을 얻을 수 있었다.

-기후변화는 중립적 느낌이 나는데 왜 지구온난화 또는 기후위기라고 하지 않나.

△지구온난화는 자칫 따뜻하고 좋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이상기후에 대해 경각심을 갖자는 뜻으로 기후변화라는 말을 쓴다. 유럽에서는 기후위기라고 쓰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센터는 2008년 고건 전 총리가 주도해 만든 비영리 공익단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부터 100년간의 평균보다 1.1도 높았고 지금처럼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21세기 말 기온이 3~5도 더 오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근 5년, 10년이 역대 가장 더웠다. 대기 중 온실가스 열의 90%를 흡수하는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 홍수·가뭄·산불이 자주 발생하는데 지금이 관측사상 최고치다. 최근 몇달간 지속된 호주산불로 코알라 등 10억마리 이상의 동물이 죽었는데 이는 위기를 넘어 재앙 수준 아닌가.



-이런 식이라면 몇십년 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 설립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해 9월 ‘해양 및 빙벽에 관한 보고서’에서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는 게 예상보다 더 빠르다. 20~30년 뒤에는 이미 늦는다. 티핑포인트를 넘어서면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소용이 없다”고 밝혔다. 해외에서 유명한 기후경제학자인 이회성 의장이 이끄는 IPCC의 보고서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50년 만에 한 번씩 발생하던 슈퍼태풍이 20~30년 뒤에는 매년 올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2013년 말 필리핀에서 발생한 최고 시속 375㎞의 슈퍼태풍으로 모든 게 초토화되며 2만5,000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나.

-온실가스는 미세먼지의 원인도 되는데.

△맞다. 조천호 전 기상과학원장은 ‘파란하늘 빨간지구’라는 책에서 “미세먼지도 기후변화도 원인물질은 유해가스나 온실물질로 같은데 미세먼지가 뒷골목 불량배를 만난 정도라면 기후변화는 핵폭탄급”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미세먼지도 고통스럽지만 기후변화는 훨씬 더 큰 위협이다.

-일각에서는 기후위기의 원인을 자연주기설이라고 주장하는데.



△45억~46억년 지구 역사에서 이렇게 뜨거워진 적이 없다. 산업혁명으로 화석연료를 마구 땐 결과다. 태양열이 지구를 덮였다가 대기로 흩어져야 하는데 비닐하우스처럼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등이 온실가스층을 형성해 지구가 뜨거워진다. 미세먼지도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해 발생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렇게 재앙과 위기가 나타나는데 몇억년 주기설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체결돼 내년 1월부터 적용되는데 정작 미국은 탈퇴해버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인도 등에 비해 가혹한 규제를 받는다며 2017년 6월 협약 탈퇴를 선언하고 지난해 11월 유엔에 공식 통보했다. 하지만 중국(약 21%)만큼이나 미국(20%)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데 이렇게 악동 노릇을 해서 되겠나. 파리협약은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했던 교토의정서가 올해 만료된 뒤 내년부터 시행된다.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자’는 취지로 세계 197개국에 적용되는 구속력 있는 합의다. 심지어 북한도 참여한다. 법적 효력이 없다고 하지만 실은 더 강력하다. 수출 시 탄소세를 내야 하며 통상제재를 받을 수도 있고 여러 강력한 제재 수단이 있다. 다행히 미국에서도 주나 시 등 지방정부뿐 아니라 기업·학계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참여한다(We are still in)’는 곳이 많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2016년 ‘레버넌트’라는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자리에서 “북극에서 얼음이 녹고 있고 기후변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며 ‘행동’을 촉구하지 않았나.

-우리나라도 파리협약에서 제시한 감축목표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2010년 6억5,700만톤의 탄소를 배출해 1990년 대비 2배가 늘어났다. 제가 장관에 취임했던 2011년에는 4.4% 늘었다가 2012년 0.4% 증가에 머물렀고 그다음 해는 마이너스를 기대했는데 (정권이 바뀐 뒤) 화석에너지 사용이 증가하며 다시 늘었다. 지난해 11월 말 UNEP가 각국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이행현황을 조사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미국·브라질·캐나다·호주·일본·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더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탈원전으로 한국의 2030년 탄소 배출량이 파리협약에 제시한 목표치보다 15%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7위이나 1인당 배출량은 4위라고 나왔다.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2년 전 유엔기후변화 총회 세미나를 참관했을 때 보니 세계적으로 2050년까지 원전이 늘어나다가 이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기술 발전으로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더라. 그런데 급격한 탈원전으로는 화력발전이 늘 수밖에 없고 소비를 줄이려면 전기세를 올려야 하는데 정치인들은 안 하려고 한다. 원전도 안전 기술이 많이 발전하고 있다. 중국이 우리 서해에 인접한 해안가에 100기가량의 원전을 짓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만 원전을 짓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온실가스 감축의 큰 수단 중 하나는 탄소배출권거래제인데.

△환경부 장관으로 있을 때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GIR)에서 배출량을 할당, 검증하는 기능을 갖추고 다음 정권(2015년)부터 산림만 빼고 에너지·사업장·건물·교통 등 모든 부문에서 시행하기로 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나 사업장에 배출권을 할당하고 초과하거나 모자라면 사고파는 개념이다. 중국은 2015년 7개 성에서 시범 실시해 2017년 말부터 전국으로 확대했으나 에너지·전력 부문만 하고 있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기후재난을 막는 데 책임감 있게 나서야 한다.

-기후변화 시장이 커지는 것은 기회가 될 수 있는데.

△물론이다. 앞으로는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2005년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한) 스턴 보고서를 낸 영국의 니컬러스 스턴 런던정경대 교수는 신기후체제가 가동되면 매년 1,800조원의 시장이 생긴다고 예측했다. 에너지 효율 개선,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R&D), 개도국에 대한 기후변화 기술 지원 등을 빨리 준비해야 한다. 제가 한국바이오연료포럼 회장을 하며 보니 처음에는 사탕수수·옥수수를 쓴다고 비난을 많이 했지만 이제 폐연료·폐식용유로 바이오중유 등 연료를 만드는 시대가 됐다. 치킨집·중국음식점에서 폐식용유를 버리면 정화에 어마어마한 물이 드는데 이를 자원으로 만드니 일석이조 아닌가. 그런데 바이오연료에 별다른 지원이 없고 규제도 많은 실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R&D 예산을 늘리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보조금으로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She is…

미국 오리건주립대 생화학박사 출신으로 KIST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그의 방에는 MB가 재임 시절 장관들에게 써줬던 ‘임사이구(臨事而懼)’라는 글이 걸려 있다. ‘임사이구 호모이성(好謨而成)’이라는 ‘논어’에 나온 말로 ‘어려운 시기 큰일에 임해 엄중한 마음으로 신중하고 치밀하게 지혜를 모아 일을 잘 성사시킨다’는 뜻이다. 지난달 임기 2년의 기후변화센터 제5대 이사장에 취임했을 때도 이 말을 인용했다. 그는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과 함께 ‘세종사랑방’이라는 세종실록 공부모임도 주도하고 있다. 과학자·교수·학생·일반인 다수와 같이한다. “세종 치세 32년을 다룬 ‘세종실록’을 다 읽었는데 당시의 과학기술 르네상스를 배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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