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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수정 기회 이미 놓쳤다"…전직 경제 수장들 '쓴소리'

전·현직 예산관료 '예우회'서

홍남기 부총리 앞에 놓고 일갈

전직 경제수장들이 현직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앞에 놓고 “정부가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의 위기 경고를 무시하고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일갈하며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경제정책 방향 수정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념 전 부총리,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한갑수 전 농림부 장관, 장병완 대안신당 국회의원 등 경제계 원로들과 홍 부총리,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을 비롯한 현직 예산실 간부 등 200여명은 지난 11일 저녁 서울 양재동 모처에서 전현직 예산관료 모임인 ‘예우회’ 신년회를 개최했다.

기획예산처 장관 출신으로 예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병완 의원은 모두발언에서 “나라 살림과 경제정책 운용에 대한 선배들의 걱정의 말씀을 공유하겠다”며 전직 경제수장들의 쓴소리와 조언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2020년도 예우회 정기총회 및 신년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한재영 기자




그는 “현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미중 무역갈등, 중국발(發) 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 대외 악재가 겹치고 있어 올해 정부 목표인 성장률 2.4% 달성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정부와 많은 규제가 민간의 활력을 지나치게 위축시키고 있다”며 “경제정책의 기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특히 정부 예산의 달인들인 전직 경제사령탑들은 “재정 만능주의와 큰 정부를 경계하라”며 엄격한 재정 건전성 관리를 각별히 당부했다. 홍 부총리는 이에 “신종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올해도 굉장히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비판과 지적을 최대한 마음에 담아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진 전 부총리와 김 전 수석, 장 의원 등 관가 선배들은 홍 부총리의 다짐에도 거듭 재정 건전성에 대한 다양한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올해 512조원의 슈퍼예산을 편성한 데 대해 장 의원은 “별도의 재원마련 대책이나 지출 구조조정 없이 언제까지 이렇듯 재정지출을 확대할 수 있겠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60조원이 넘는 적자국채 발행을 전제로 올해 국가 예산을 지난해보다 9.1% 늘리면서 이로 인해 건전성 지표가 급격히 나빠지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증가율이 10%에 가까운 초(超)팽창 예산이 편성되면서 대표적 재정 건전성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올해 유럽연합(EU)의 권고 수준(3%)을 넘어 3.6%까지 나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기획원 출신의 한 원로는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견줘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상황이 건전하다고 강변하지만 그 증가 속도가 가파를 수밖에 없는 우리 여건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정 건전성 악화가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이는 전반적인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진 전 부총리도 “무분별한 재정 확대와 정부 비대화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가하고 엄격한 재정준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부총리는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무와 함께 건전성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올해는 재정준칙을 반드시 만들어 큰 틀에서 재정 운용이 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경제부처 전직 수장들은 아울러 민간의 경제활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현실에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장 의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자영업자까지 사업 철수나 탈한국을 얘기한다”며 “국내 투자 없이 어떻게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복지 한국을 뒷받침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가정신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홍 부총리 등 후배 관료들로부터 ‘영원한 부총리’로 예우를 받은 진념 전 부총리는 “홍 부총리를 비롯한 현직 후배들이 여러모로 어려운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는 데 대해 연민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면서 건배사로 ‘뚝배기’를 외쳤다. 그는 ‘뚝심·배짱·기백을 가지고 새로운 한국 경제사를 만들자’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김동연 전 부총리는 이날 모임에 불참했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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