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 유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오히려 정유주들은 상승세다.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정제마진이 개선되는 움직임을 보이는데다 중국 기업들이 코로나19 영향으로 공장 가동을 멈추면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자 주가 바닥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정유업종 대장주인 SK이노베이션(096770) 주가는 지난 3일부터 이날까지 11.34% 상승했다. 이날도 오전 내내 강세를 보이다 오후 들어 0.72%(1,000원) 하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S-OIL도 같은 기간 7만3,500원에서 7만6,200원으로 3.67% 상승했으며 GS(078930)칼텍스를 계열사로 둔 GS는 2.33%, 현대오일뱅크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267250)도 9.72%의 강세를 각각 기록하며 이달 들어 비슷한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애초 정유주는 중국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 경제가 질병에 영향을 받게 될 경우 세계 경제 회복세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국제 유가는 코로나19 확산에다 러시아의 반대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추가 감산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였다. 지난 10일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49.57달러까지 하락하면서 한 달 사이 10% 가까이 급락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정유사 이익의 바로미터로 사용되는 정제마진은 오히려 이달 들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마이너스를 기록하던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지난달 배럴당 0.4달러로 여전히 부진했지만 이달 들어 평균 2.5달러 수준까지 상승한 상황이다. 최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 오히려 이익 개선 가능성이 엿보이자 주가가 상승세를 보이는 셈이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 우려처럼 코로나바이러스 자체는 분명 수요 감소 요인”이라면서도 “하지만 제품 공급 감소가 더 크게 작용하면서 마진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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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국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면서 중국 정유업체들이 생산량을 크게 줄인 것이 결정적이었다. 실제로 중국 원유 정제능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티폿(Tea-Pot·소형정제시설)의 가동률은 이달 들어 크게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평균 70%에 육박하던 중국 티폿 가동률은 이달 들어 40% 중반대로 뚝 떨어졌으며 S&P글로벌플랫츠에 따르면 중국 산둥 지역 티폿의 이달 가동률은 4년 내 최저인 40%까지 낮아졌다.
여기에 국내 정유사들의 주력제품인 휘발유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는 것도 정제마진 회복에 도움이 됐다. 국제 휘발유 가격은 3일 배럴당 61.9달러까지 떨어졌지만 최근에는 67달러선까지 회복했다. 중국의 제품 공급 감소와 함께 중동 정유사 정기보수로 중동지역 수입 물량이 늘었고 반대로 인도 정유사들의 수출 물량이 이달 들어 감소했다. 휘발유가 주력인 미국 정유사들의 가동률도 하락하면서 휘발유 공급이 더 줄었으며 특히 IMO 2020 실시에 따라 저유황선박유(VLSFO) 수요가 늘어나자 정유사들이 휘발유 생산량을 줄이고 저유황유 생산을 늘리면서 수급에 불균형이 발생했다.
정제마진이 최근 회복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국내 정유사들의 손익분기점(배럴당 4달러)에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유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더 이상 확산하지 않고 진정될 경우 지난해 쌓아뒀던 저유황유 재고가 줄어들 2·4분기부터는 마진 개선, 그리고 하반기에는 실적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증권가에서도 최근 정유주가 지난해 하반기 낙폭이 컸고 수급 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들면서 ‘비중 확대’ 시기로 바라보는 모습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의 마진 반등이 일시적인 것으로 다음달 설비가 재가동될 경우 재하락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정현 교보증권 연구원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수요 위축은 우려되지만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고 본다”며 “국내 정유사들의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아졌고 앞으로 신규 공급 부담도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진단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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