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보통 4월이면 사라진다. 더위는 이런 종류의 바이러스(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를 죽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 말이다. 근거로 제시한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긴 대화를 나눴는데 일반적으로 말해서 4월이면 더위 때문에 그런 종류의 바이러스가 죽는다고 매우 자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2020 도쿄하계올림픽(7월24~8월9일) 차질 우려에 대해 “취소나 연기는 없다”고 할 때 내세우는 것도 여름철 높은 온도와 습도이다. 가와부치 사부로 도쿄올림픽 선수촌장은 최근 “바이러스는 습기와 더위에 약하다. 장마철은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최고의 계절”이라고 대꾸했다.
이와 관련,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대한의사협회 과학검증위원장)가 최근 소개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에서 코로나바이러스는 기온 4도, 상대습도 20% 조건에서 물체표면에 28일까지 생존하는데 4~5월처럼 기온 20도, 상대습도 20%가 된다면 1주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습도는 현재 수증기량과 공기가 최대로 포함할 수 있는 포화수증기량의 비율이다. 만약 장마철과 비슷하게 습도 50%라면 바이러스는 24~48시간밖에 살지 못하고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간다면 대체로 24시간 내 비활성화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따라서 “따뜻한 날씨가 코로나19를 억제하는 데 분명한 효과가 있다”는 게 최 교수의 분석이다.
이 같은 예측은 독감처럼 코로나19가 춥고 건조한 날씨에 널리 퍼지는 경향이 있어 따뜻해지면 소강상태를 보이지 않겠느냐는 기대에 따른 것이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재료과학·공학스쿨 교수는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찬 공기는 비강과 기도에 자극을 일으켜 사람들이 감염에 취약하게 만들고 겨울에는 실내에서 생활할 확률이 높아 감염률이 높다”며 “감염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방출되는 호흡기 물방울(비말)을 통해 바이러스가 퍼지는데 차고 건조할 때 더 멀리 퍼진다는 연구도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였던 사스는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시작해 세계적으로 2003년 7월까지 유행, 8,096명의 감염자가 발생하고 774명이 숨졌다. 여름철에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대로 4월에 코로나19가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것이나 온도·습도가 높은 여름에 바이러스가 약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중동이나 동남아에도 퍼지면서 바이러스가 더위에 약하다는 속설이 무너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6일 오전9시 기준으로 동남아의 경우 싱가포르에서 91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태국(37명), 대만(31명), 말레이시아(22명), 베트남(16명)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중동 역시 이란(61명), 아랍에미리트(13명), 쿠웨이트(8명), 바레인(8명) 등 확진자가 늘고 있다. 중동은 전체적으로 무덥지만 건조한 편이다. 이 중 이란은 보건부 차관까지 확진 판정을 받는 등 확진자가 61명, 사망자는 12명에 달한다. 이란은 중동이라고 해도 수도인 테헤란의 2월 평균 기온이 최저 0.7도~최고 9.9도 정도로 일교차도 크고 쌀쌀한 편이다.
메르스를 봐도 바이러스가 더위에 약하다는 것에 의문이 든다. 2012년 4월 아주 무더운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발생했던 메르스도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중동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우리나라에는 2015년 5월부터 186명이 걸려 38명이 숨진 뒤에야 12월 말 종식선언이 이뤄졌다.
조남준 교수는 “최근 홍콩대 연구 결과에서 사스 바이러스가 낮은 온도, 낮은 상대습도에서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알려지지 않은 게 많아 질병X(DiseaseX)라고도 불린다”며 “여름에 코로나19가 사라질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은 시기상조”라고 힘줘 지적했다. 싱가포르가 초기에 중국인들의 유입을 차단했고 날씨가 무덥고 습도도 높지만 확진자가 100명 가까이 되는 게 단적인 예라고 했다. 한마디로 날씨가 더워지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를 너무 많이 하지 말라는 뜻이다.
따라서 올림픽이 여름에 열린다고 해서 일본이 200여개국의 선수와 팬 등 1,000만명 가까운 인파가 몰릴 때 과연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스콧 고틀립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은 22일 트위터에 “일본은 겨우 1,500명 정도 검사했으며 거대한 (코로나19) ‘핫스폿(거점)’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5일자 보도에서 한국이 코로나19 검사를 3만5,000건을 하는 동안 미국은 일본에서 데려온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승객을 제외하고 426건밖에 검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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