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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의 뒤안길]지장암 비로자나불상

광해군 부인 발원...정적 원당까지 거쳐

보물 제1621호로 지정된 서울 지장암의 비로자나불상. /사진제공=문화재청




지난 2007년 여름, 보물 제1621호인 서울 지장암 비로자나불상 속(복장·腹藏)에서 중요한 발원문 한 장이 발견됐다. 여기에는 장열왕비, 즉 광해군의 부인 류씨의 발원 내용이 담겨 있었다. 1622년 광해군의 부인 류씨는 당시 임금이자 남편인 광해군과 세자 내외, 돌아가신 친정부모와 먼저 죽은 자식을 위해 왕실 사찰인 자수사와 인수사 두 곳에 11존의 불상과 많은 수의 불화를 발원하고 조성했다.

왕비의 염원은 1년 뒤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허망하게 무너졌다. 자수사와 인수사도 현종 2년(1661년)에 폐사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장열왕비의 발원문 덕에 전혀 몰랐던 엄청난 규모의 왕실 발원 불사의 실체가 346년 만에 드러났다. 이후 서울 칠보사와 안동 선찰사에 모셔진 장열왕비 발원의 불상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 중 서울 지장암과 칠보사 불상은 자수사·인수사에서 경기도 광주 법륜사를 거쳐 1920~1930년대에 지장암으로 옮겨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광주 법륜사는 광해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영창대군의 명복을 빌던 사찰이다. 어떻게 해서 장열왕비의 염원이 담긴 불상이 정적이던 영창대군의 원당으로 흘러들어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불교의 차별 없는 해원상생(解寃相生)의 정신이 반영됐으리라. 이 불사에는 당시 조선 팔도에서 내로라하는 조각승들이 거의 다 참여했는데 임진왜란 이후 조선 불교계가 팔도도총섭 체제로 시스템이 구축됐기에 가능했다. 장열왕비의 발원으로 만들어진 이 불상은 자수사·인수사, 광주 법륜사, 서울 지장암을 돌고 돌아 마침내 2017년 국가(국립중앙박물관)의 품으로 왔다.
/손영문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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