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전국을 덮치면서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찾는 이들이 거의 없다 보니 가게 문을 열긴 했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다. 손에 쥐는 수입은 줄었지만 매달 임대료를 내면서 직원들 월급까지 줘야 하는 시장 상인들의 한숨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름에 빠진 이들에게 모처럼 반가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남대문시장 상가 주인들이 상인들의 고통을 분담하고자 3개월간 임대료 20% 인하를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지난달 28일 남대문시장을 찾아 임대료 인하를 통해 일명 ‘착한 임대인’으로 박수받는 건물주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상인 580여명이 입주해있는 삼호우주주얼리타운의 성하준(65) 대표는 요즘 마음이 착잡하다. 자신의 건물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 손님이 없어 멍하게 앉아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찢어진다. 가뜩이나 불경기로 힘들어하던 상인들은 최근 코로나19 사태까지 덮치면서 20여개 점포가 퇴점 신청을 했다. 성 대표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웅심리나 돈이 많아서 임대료 인하 결정을 한 게 아니다”라며 “누구보다 힘들어할 상인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 역시도 40년 전 이곳 남대문시장에서 0.5평짜리 반칸 월세로 처음 장사를 시작했다. 미국으로 주얼리를 수출하다가 1992년 LA 폭동으로 망해 제주로 도피하고, 사채를 빌렸다가 이자를 못내 빚쟁이들에 쫓겨 다닌 적도 있다. 자는 시간만 빼고 일에 매달려 1999년 처음 건물을 사들이며 재기에 성공했다.
누구보다 장사하는 상인의 마음을 잘 알기에 성 대표는 3개월간 2억원에 달하는 임대료 수익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는 “건물 내 방송으로 임대료 인하를 발표하는 순간 상인들이 박수 치며 환호하는 걸 듣고 정말 뿌듯했다”며 “눈 속을 파헤치면 새싹이 있듯 이번 결정이 시름에 빠진 상인들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3일 남대문시장에서 가장 먼저 임대료 인하를 결정한 신명호 고려인삼백화점 대표도 1988년부터 이곳에서 33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 출신 건물주다. 고려인삼백화점 건물에는 현재 50여개의 점포들이 입주해있다. 신 대표는 “나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1960~70년대 평화시장에서 세입자로 장사를 하셔서 상인들의 마음을 잘 안다”며 “나중에 어머니가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시곤 ‘너무 잘했다’고 말씀해주셔서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상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임대료를 인하한 바 있다. 신 대표는 “주변에 아는 건물주들에게도 임대료 인하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상인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 임대인들의 잇따른 결단으로 상인들은 조금이나마 시름을 덜게 됐다. 함문기 삼호우주주얼리타운 상인회장은 “상인들 모두 내일은 또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걱정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생각지도 않은 임대료 인하 소식에 너무 반가웠고,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 대표 소유의 상가에 입점해있는 윤완석 보람안경원 사장도 “손님이 뚝 끊겨 빚내서 월세를 낼 판”이라며 “같은 상인으로서 상인의 마음을 이해해줘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착한 임대인’들은 남대문시장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내 상가를 소유한 동승은 4,300개 점포에 대해 3개월간 임대료 20%를 인하하기로 했다. 대구·경북과 부산·인천·충주·제주 등지에서도 건물주들의 임대료 인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김현상·김성태기자 kim01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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