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보험사기 혐의로 구속된 경남 진해의 병원장 A씨 집무실 책상에서 이상야릇한 문구가 발견됐다. ‘보험사 돈은 눈먼 돈. 임자 없는 돈.’
A씨에게 이 문구는 잠언과도 같았다. 그는 조직적인 보험사기를 일삼았다. 이른바 ‘나이롱 환자 조물주’였던 그는 허위입원 기록을 조작하며 유령환자들이 보험사에서 무려 44억5,000만원을 편취하도록 도왔다. 그는 어떻게 됐을까. 사건이 발생한 지 4년이 지난 현재 A씨는 여전히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보험사기가 적발되고 감옥에 갇혔지만 이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1심 판결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고 기약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보험사기에 보험산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연간 보험사기로 발생하는 보험금 누수 추정액만도 6조~7조원 수준. 국민건강보험 누수까지 감안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
문제는 누수 추정액의 약 12~13%만 실제 적발된다는 점이다. 현재 보험사기특별법상 보험사기로 적발되더라도 별도의 환수절차를 밟아야 한다. 보험사기의 80~90%가 연성사기에 해당하지만 대부분의 연성사기는 금액이 적고 민원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그대로 보험금이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보험사기의 피해를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이 부담하게 되는 꼴이다. 보험사기에 따른 보험금 누수로 가구당 부담해야 할 보험금 누수 규모는 31만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한 사람당 약 8만원을 부담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보험사기에 대한 너그러운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병원장의 쪽지처럼 ‘보험금을 못 받으면 나만 손해’라는 인식에 너도나도 크고 작은 보험사기에 가담하기 때문이다.
보험을 완성하는 기본원칙은 ‘상호부조(相互扶助)’다. 예상치 못한 사고와 질병으로 재산상 피해를 당한 사람이나 기업 등에 가입자들이 기꺼이 보험금을 대주기로 약속하고 계약하는 것인데 본인 역시 불의의 사고가 닥쳤을 때 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보험이라는 완벽한 제도는 탄생할 수 없었다. 보험사기에 따른 보험금 누수가 커질수록 보험의 지속가능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보험의 기본원칙인 상호부조 정신 자체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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